흔한 자기 부정과 정신 승리.
어머니가 젊을 적 적십자 활동을 열심히 하셨었다. 어느 날은 노인 봉사를 다녀오시고 지나가는 말로 남자 노인들에게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들에게는 그렇지 않은데 꼭 할아버지들은 특유의 냄새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함께 버스를 타고 갈 때 그분들 뒷자리에 앉으면 무척 곤욕스럽다 하신 것이 기억난다. 그땐 그게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고령이 되신 할머니 방에서 독특한 냄새를 맡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노인이 되면 잘 씻지 않아서 나는 냄새라고 생각했었다.
최근 이사를 하고 좀 지났을 때 일이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 문을 열었다. 옷을 쳐다보기도 전 어딘가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무엇일까. 이 느낌은 뭘까. 잠시 고민 끝에 '전에 없던 냄새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전에 간혹 아내가 내 옷장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있으니 제발 옷 좀 자주 빨아 입으라고 말하곤 했다.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니 옷에 냄새가 밴다는 말이었다. 당시엔 그럴 수도 있지 싶었지만 유독 이번에는 향의 느낌이 달랐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뭐랄까 홀아비 냄새라고 하는 것 같은 무엇.
노인취. 나이가 든 사람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 가령취라고도 부른다. 나이가 들면 정말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날까? 2001년에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라는 피부과학 분야의 유명 학회지에 발표된 시세이도 (일본 화장품 회사)의 논문이 있다. 26살~75살까지를 대상으로 연구해 보니 40살 이상의 피험자에서 2-nonenal이란 성분이 검출되었다. 이 성분은 불쾌한 기름기, 풀 냄새 같은 향을 낸다. 이 연구의 주장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게 되는 것이 맞다. 시세이도 연구진은 몇 년 후 추가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세포 배양 조건에서 2-Nonenal이 피부의 각질세포 생존력을 감소시키고 세포 사멸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즉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데 자신들이 연구한 어떤 성분들이 이런 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몸의 냄새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얘기를 풀어보자. 노인취는 아니지만 VOC (volatile organic compounds; 휘발성 유기물)라는 것도 있다. 인간의 피부는 다양한 휘발성 대사산물을 방출하는데 주로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의 원인이 된다. 겨드랑이 냄새에는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도 있다.
'특정 유전자를 보유해 겨드랑이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 6,495명의 여성들을 표본으로 실시... 대략 2%에 해당하는 117명의 여성들이 특정 유전자를 보유해 겨드랑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연구 필자들은 유전자 테스트의 대안으로써 귀지의 상태로 이 유전자의 보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마른 귀지가 나오는 사람은 겨드랑이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인 반면, 촉촉한 귀지가 나오는 사람은 겨드랑이 냄새가 나는 유전자 패턴의 보유자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양인들은 귀지가 촉촉한 사람들이 많다나. 우리가 흔히 서양인의 암내라고 부르는 것에는 유전적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VOC가 피부 위의 상재균에서도 분비되며 사람마다 독특한 취의 이유가 된다는 것도 제시되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까지 확장되었다.
잘 씻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나이가 들면 특정한 성분이 몸에서 많아지고, 그로 인해 노인의 냄새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정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연구자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노인취를 설명하는데 이처럼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은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원인이 단순할수록 아무리 노력해도 거스르기 어려운 숙명 같은 느낌이 든다. 학문적인 이해를 떠나 문득 슬퍼진다. 전에는 아내가 '자기 몸에서 냄새 나'라고 할 때, 옷을 잘 빨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고 우겼었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회사에서 나이 든 고객들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을 한 적이 있는데 많이 들은 얘기가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라고 대놓고 광고하면 정작 그분들은 사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아직 그걸 이용해야 할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 막상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그래서 옷 어딘가에 깊숙하게 배어버린 냄새)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자니, 차라리 옷장에서 나는 냄새는 아내의 말처럼 빨래를 자주 하지 않아서 라고 믿고 싶어 졌다. 그래,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생각난 김에 오늘은 빨래를 좀 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