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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17. 2021

조직 혁신의 적기는 언제일까?

회사를 오래 다녀보니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매년 조직구조에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사업부가 생기고, 있던 것은 사라지거나 다른 부서로 옮겨진다. 사람들은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발령이 난다. 연말은 항상 뒤숭숭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상사가 남아 있기를 바라는 (또는 반대로 싫어하는 상사가 떠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소문은 소문을 증폭시켰다. 누가 임원이 된다더라, 어느 부서가 어떻게 된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이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일에서 손을 놓고 관망하였다.


이렇게 돼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매년 성장하던 때가 있었던 반면, 바닥이 언제인지 모를 위기에 흔들리는 때도 있었다. 성장이든 위기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다만 오늘의 결정이 몇 년 뒤의 결과로 연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 올해 세일즈와 성장의 성패가 반드시 당해연도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라고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나비효과와도 같은 인과관계의 특성으로 인해 3년 뒤, 5년 뒤에도 계속 성장할지 아니면 실패로 드러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저 꾸준히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기 위한 활동을 할 뿐이다. 다양한 혁신활동의 이름으로 이것저것 시도가 이뤄지곤 하는데 그것이 진정한 혁신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자기만족에 그치는 셀프 칭찬이었는지는 몇 년 뒤의 결과가 말해준다. 


최근 즐거움 중의 하나가 무한도전 다시 보기다. 현역 시절의 무한도전을 매주 챙겨보는 무도빠였기에 어지간한 에피소드는 다 알고 있지만 다시 보기를 해도 여전히 재미나다. 한 에피소드에서 그동안의 무한도전을 뒤돌아보는 내용이 있다. 거기에서 어떤 작가는 무한도전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포맷이 없음'을 꼽았다. 신설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엔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시청률이 나오기 시작하면) 형태를 정형화하면서 안전하게 가는데 비해 무한도전은 그런 것이 없어서 늘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격하게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도전을 즐겼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거였다. 늘 다른 '특집'을 했기 때문에 이번 주엔 뭘 하나 기대하고 지켜보는 재미가 무엇보다 컸던 것이다. 




제품이 잘 팔리고 마구 성장하는 때엔 누구나 '자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해서 이렇게 성장하는 거라고 믿는다. 성공의 경험은 기존의 틀을 유지, 보수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잘 되는데, 잘하는데 굳이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부담이다. 바꾸더라도 기존 틀을 벗어날 과감성은 없다.


몇 천명이 근무하는 큰 회사의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내게 해 준 얘기가 있다. 임원의 70% 정도는 바꿔야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단다(현직 임원분들이 들으면 화날 일). 그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공 방정식에 익숙하다. '내가 옛날에 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꼰대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난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겠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큰 성공을 이끈 한 방이 있었기 마련이다. 그 한 방의 기억, 그리고 강력했던 보상은 처신의 방향을 고정시킨다. 지난 날의 성공 방정식이 당분간은 나를 지켜줄지 몰라도 약발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성장의 끝을 지나 하락의 분위기가 압도하는 그때가 조직 혁신은 훨씬 더 어려운 듯하다. 괜히 하나 잘못 건드려서 현재의 작은 성장이라도 흔들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고 하지만 일단 익숙한 것에 발을 딛고 바꿔보려 한다. 좋은 말로 pivotting이 될 수도 있다. 뭐라도 바꾼 것처럼 '보여주기 식' 조직 개편은 미봉책일 뿐이다. 본질을 뜯어고치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잘 되던 장사가 한풀 꺾이고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를 겪어보니, 조직을 혁신하는 기회는 차라리 잘 나가고 있을 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현금이 계속 쌓여 투자가 가능한 때에 과감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지 싶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여기에 투자해도 되나, 돈을 써도 되는 것일까 고민만 하다 끝이 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조직을 바꾸는데도 오히려 과감성이 떨어진다. 장고 끝에 악수라도 두면 다행, 아예 손조차 떼지 못한다. 


잘 나갈 때는 잘 되니까 혁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저항한다. 
안될 때는 안되니까 새로운 시도보다 더 보수적 판단과 실행이 뒤따른다.


그리고 조직 혁신이란 단순하게 어떤 부서를 만들고 없애는 수준이 아니어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과 고객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에 맞게 필요한 활동(자원의 투자, 인력 채용 등)을 하는 것. 사실 그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조직 개편의 모습일 것이다. 

연구소 차원에서 보면 이렇다. 미래의 화장품 시장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O 년 안에 OOO 기술이 담긴 혁신 제품을 개발하자. 그러면 OOO 연구에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이뤄진다. 거기에 맞게 필요한 인력을 구성하기 위해 조직을 신설할 수 있다. 적절한 리더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서 단시간에 1,2위 그룹 따라잡기를 시도해야 한다. 이런 내 생각에 비춰보면 아직 제대로 된 조직 혁신을 본 경험이 없는 셈이다. 


조직을 바꾸기만 해도 혁신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지 않다. 혁신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시작이 조직 개편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의 이유와 방향성, 새로운 조직도의 모습에 구성원의 많은 공감대가 필요하다.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이해도 없이 몇 군데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혁신이 진짜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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