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보는 것도 맞지만 프로답게, 다르게.
얼마 전 <아무튼 출근>이란 프로그램을 봤다. 이 프로그램은 진짜 자기 직장을 다니는 일반인의 이야기다. 파일럿 프로그램일 때 우리 회사 직원이 출근해서 내부적으로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 '밥벌이'로서 직장인이 가진 애환과 고민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동료의식을 느낀다. 가끔 연예인이 직장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일하는 척 해보는 것이었다. <아무튼 출근>은 물론 적당한 가공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거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다. 관찰 예능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삶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 더하기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관음적 니즈가 맞닿는 지점이다. 관찰 예능으로 남의 삶 보여주기 실력이 만랩인 공중파 방송사의 전문성이 더해지니 때깔 좋은 직장인 브이로그가 탄생했다.
디지털, 소통이라는 단어가 회사 안에서 이슈의 중심이 되다보니 이런저런 시도가 많다. 대표적으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내부 리쿠르트를 거쳐 브이로그 전문 인력(?)을 선발했다. 유튜브 좀 하는 사원들이 있으니 한 번 대놓고 회사 홍보도 할 겸 그들의 능력도 활용할 겸 시작한 일이 아닐까 싶다. 다들 유튜브 한다는데 우리도 해봐야 하는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소식을 듣고 비록 내가 유튜버는 되지 못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본사 근무 하는 분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서 몇 번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었다.
누가 볼까? 왜 찾아서 볼까?라는 아주 단순한 명제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답변이 신통치 않으면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남들 다 하니까, 보고용으로 적당하니까는 좋은 답이 아니다. 우리 회사 직원의 브이로그를 보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그 회사는 무얼 하는지 궁금한 사람일 것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기는 어렵다. 여러가지 보안에 관련된 이슈들이 잔뜩이다. 어쨌든 그래도 OOO 회사 직원은 이런 일상을 보내는구나라는 정보와 재미가 담겨야 한다.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좋은 컨텐츠를 구성해야 한다. 점심 먹는 것도 직장인의 모습 중 하나지만 식사라는 행위 안에 무엇을 담을까 기획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우리끼리 맛있는 것 먹고 떠드는 즐거운 모습 보다는 일부러 검색어를 넣고 찾아보는 취준생을 위해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영상은 찍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글에 기승전결을 갖춘 흐름이 있듯, 영상은 이런 흐름이 더 세련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단순히 유튜브 썸네일만 그럴 듯하게 만들어서 호객 행위 해봤자 끝까지 시청할 확률은 낮다. 몇 초만 재미 없어도 금방 꺼버리는 것이 유튜브의 속성인데.
심심하게 찍어도 보고 싶은 컨텐츠가 있으면 흥할 수 있다. 배우 신세경님은 배우라는 자기 브랜드가 확고한 사람이다. 그의 브이로그는 심심해도 일부러 찾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신세경이라는 존재 자체가 브이로그의 컨텐츠다. 속칭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 네임밸류나 브랜드 가치가 높지 않다면 컨텐츠 구성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특히 직장인 브이로그는 영상의 세련미 보다는 엿보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린 컨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작년에 출판을 준비하면서 유튜브에서 '연구직', '회사원' 이야기를 여러차례 검색해 봤었다. 네이버에서도 다양한 검색어로 검색을 했다. 연구직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다뤄지는지, 조회수는 낮더라도 빈도가 높은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등을 찾아봤다. 내 이야기가 책으로 다뤄지면 누가 읽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 한 것이다. 회사원 이야기는 많았지만 연구직 회사원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때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컨텐츠의 희소성, 그리고 독자층이 매우 한정적임이었다. 기존에 만들어진 컨텐츠가 적기 때문에 선점 효과, 유일한 작가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찾는 사람이 적어서 시장 가치가 낮은 품목일 수도 있음이다.
Niche market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고객 고충과 해결 니즈가 있지만 그 시장의 크기나 수요의 양이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컨텐츠에 대한 제공을 누군가 필요로 하지만 마켓 사이즈가 작다보니 수익성은 높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어 매일유업의 특수 분유는 그런 시장을 충실하게 대응해 주는 제품이다. 회사원의 본질적인 모습과 고민은 같아도, 연구직에 대한 높지 않은 수요를 고려했을 때 내 책이나 브런치는 과연 niche market을 공략하는데 성공이었을까? 결과는 현재까지의 팔림새가 뒷받침해 준다 (물론 시장의 수요가 크다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양질의 컨텐츠는 기본이어야 한다).
일반인의 브이로그가 흥하는 시대라해도 이슈화 가능한 전략 없이 무턱대고 포스팅만 해서는 답이 없다. <아무튼 출근>처럼 하나의 스토리를 꽤 괜찮은 영상과 이야기로 구성해 내지 못할 것이라면, 누가 왜 일부러 찾아서 볼까?라는 질문에 먼저 답부터 찾은 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브런치에 올리는 <연구하는 회사원>의 글을 쓰면서 나 또한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