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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ug 23. 2021

창의적 업무라는 클리셰 깨트리기

혁신에 대한 아젠다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친구가 있다. 바로 창의성이다. 창의(성)의 뜻은 기존의 것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자세와 그 결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라, 창의적으로 도전하라. 회사에서 창의성은 업무에서 일종의 클리셰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서가 하는 일은 아주 루틴한 업무라서 얼핏 보면 도무지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이미 잘 갖춰진 SOP(Standard Operating Protocol or Procedure)가 있고, 이것을 약간 변형할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다른 부서의 의뢰를 받아서 정해진 일정과 규칙 안에서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얻는다.


가끔 답정너인 경우가 있다. 전략적 판단이 이유일 수도 있고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이유일 때도 있다. 어느 정도 협상이 가능하지만 막무가내인 경우가 있다 (회사 일이 그렇다). 답이 정해진 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잘못되었다고 항변하고 논쟁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면, 그래서 뭔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능성이 보이면 싸워도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다물고 빨리 해치우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의 하나가 된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감정 소모만 있으니 말이다.


빨리 잘 해치우기 위해서는 질문(설정)이 중요하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이 틀리게 (또는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답을 바꿀 수 없다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도록 질문을 달리 해야 한다. 질문이 달라지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어떤 질문이 제대로 된 것인지 모르니까 말이다. 질문을 바꿨지만 정답인지 아닌지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수준보다는 훨씬 쉽지만, 찾은 것이 쓸만한 바늘인지는 모르는 법이다.


이런 제한된 상황 - 답이 정해지고 질문이 새로워야 할 때 - 에서 나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질문을 설계하면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실험의 업무로 풀이하면 '실험계의 선정부터 배양 조건, 물질의 처리 방법, 선택 가능한 평가법, 특정한 자극원 선택 등' 매우 디테일하게 쪼개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같은 물질로 같은 평가를 하더라도 배양의 조건에 따라 세포가 보이는 반응성의 차이가 생긴다. 그 특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경험한 적이 있다면 지금 필요한 답에 딱 맞는 설계에 반영하기는 쉬워진다. 평가가 필요한 물질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물성은 어떤지, 구조나 추출 방법에 따라 어떤 형태의 물질이 많이 존재하는지 확인함으로써 답을 내는데 최적인 실험의 방향을 실험 전에 구체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화학적 평형을 이루는 물질의 구조, 추출물 내 가장 많이 포함된 활성 성분의 특성 등을 이해하면 막연한 시도가 아닌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길이 쉬워지는 법이다.


그것을 약간 나쁜 의미에서 해석하면 ‘뭐가 좋을지 몰라 다 준비했어’처럼 볼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쉽지, 다 준비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전략, 기술이 모두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디테일을 하나씩 체크하면서 최선의 과정과 결과를 준비하는 것, 나는 이것을 루틴한 업무에서 찾는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의견이 창의성에 대해 너무 넓은 의미를 두는 것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창의적이라고 불러야 할까? 당신이 만일 제한된 조건에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최적의 방안을 고민하고 설계한다면 충분히 창의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앞뒤 가리지 않고 주어지는 일을 SOP에 따라서 아무 고민 없이, 묵묵히 열심히 수행만 하는 것이 창의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잘하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관찰해 보니 기본적으로 전문성과 경력, 경험의 누적 정도 같은 인자들이 필요했다. 관찰만 했지 분석까지는 하지 않았으므로 각 인자들의 중요도나 weight를 수치화해서 매길 수는 없다. 아직 경력이 부족한 직원과 10년 차 정도의 짬이 찬 직원을 살펴보니 갖춰진 스킬과 지식이 당연히 차이가 있었다. 기본기가 다르니 생각의 틀과 방법에서 상상 가능한 범위가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아이디어의 반짝반짝함 또는 문제를 설정하는 노련함에서 더 벌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창의성을 발휘할 가능성은? 답은 뻔하다. 물론 리더는 부족한 직원을 육성하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며, 그 방법은 노련미 갖춘 경력자의 도움을 빌면 되겠다.


창의성을 너무 좁게 바라보지 말자. 일상 업무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다. 평범한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다면 당신은 충분히 창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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