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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18. 2021

동의 없이 평가하지 마세요

조언이라는 폭력

얼마 전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상사와 다른 몇몇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습니다(물론 방역 수칙은 준수!). 상사가 자기는 회사 나가면 창업을 하고 싶다더군요. 그래서 농담 삼아 '그러면 저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바뀌면서 그는 제 말을 다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OOO는 잘하는데,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망설여지지'


그러면서 다른 팀 분과 비교까지 하더군요. 다른 팀의 A는 이런이런 일을 되게 잘하고, 지금 다른 회사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면서 대놓고 말했습니다. 즉, 저는 그런 능력이 떨어지니까 굳이 채용할 의지가 없다는 얘기. 맘에 드는 사람은 다른 팀에 있으니 참 불만이었겠다 싶더군요. 아직 진짜 회사를 차린 것도 아니고 정말 함께 일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덕분에 진심은 알았습니다.


저는 상사의 의도를 이해합니다. 아마 저를 위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부족한 건 아니지만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평소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는 A와 저는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그러냐고 변호를 해주더군요. 그러나 그는 자기 말만 했어요. 술에 취해 자꾸 그 얘기를 하려고 하길래 저는 이제 그만 하시죠,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선을 넘을 땐 저지해 줘야죠. 어쨌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무방비 상태에서 세게 어퍼컷 한 번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보다 적절한 짤은 어디에도 없는 듯.



'충조평판'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고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줄인 말입니다. 정해신 정신과 의사가 한 말입니다. 그는 대화를 위해서는 충조평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특히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식사 자리는 그 자리에 맞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 맞습니다. 내 위치가 상사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해도 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사 연말 평가에서도 서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저런 말은 삼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안 좋은 얘기를 듣겠다고 심호흡 한 번 하고 정신을 다잡고 들어간다고 해도 안 좋은 말, 네거티브한 평가를 쉽게 수용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 동의도 없이 자기 생각을 전달하다니, 돌이켜 볼수록 예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저 역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마뜩지 않아서 몇 번이나 목 끝까지 조언이란 걸 해주고 싶은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넌 이게 문제다, 이런 걸 고쳐야 한다... 과연 효과적이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는 피드백 받은 적 없고요. 그러니까 충조평판은 다분히 화자의 입장에서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행위, 권력을 드러내는 기회일 뿐입니다. 일종의 영역 표시 같은 것이랄까요.


다른 사람을 통해  행동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저는 최근에는 마인드 세팅을 바꿨는데요. 그냥 각자 잘하는 영역에만 관심과 애정을 두기로  것이죠. 그러니까 오히려 같이   있는 영역, 동료를 활용할  있는 방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에겐 궁금한 것을 물어보니 편하고, 도전적으로 해보는 사람에겐 어려운  부탁하기 좋습니다. 사람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대부분 자기 단점을  알고 있어요. 그걸 굳이 조언, 충고라는 이름으로 타인이 후벼 파는 것은 진짜로 상호 동의가 없이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직접 겪어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동의가 있더라도  ,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Q. 리더로서 동료 또는 후배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다. 혹시 꼰대라고 보는 건 아닐까 걱정되면서도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될까?

A. 상대가 '나쁜 말도 좋으니 해 달라'라고 아무리 요청해도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것이 바로 '조언'이다.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들을 때 마음에 새기겠다, 바뀌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감정이 상하면 그 다음의 팩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최근 오은영 박사님의 강의에서 발달 단계 상 감정이 먼저 생기고 논리적인 것은 그 다음에 생성되는 것이라, 사람은 감정 케어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했다. 

연간 평가 시즌이 되면 개인별 리뷰를 하게 된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과 배려를 담아 개선할 점을 적어 보아도 매번 크게 달라지는 점을 관찰하긴 쉽지 않다. 제안하는 것은 피드백 대신 피드포워드이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즉 '이러이러한 점이 안되었다'고 하기 보다 잘 안된 부분을 '이렇게 바꾸면 내년에는 더 좋을 것이다'라고 전달의 방법을 바꿔보자. 

감정 상함의 단계를 잘 넘어가는 장치를 마련하면 그래도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팩트 전달의 기회와 가능성이 높아진다. 진심의 전달을 위해 화법과 피드백의 기술을 익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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