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지상 과제였던 박사 과정 시절에 무슨 정신이었는지 사진에 매달렸었다. 홀린 듯 부석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전날 해질 무렵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내려와 근처 민박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새벽 사진을 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겨울이었다. 추운 새벽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차려 입고 길을 오르는데 앞서 가는 스님이 한 분 계셨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분이 틀림없다. 잰걸음으로 흔들리듯 사라져 간 그를 급하게 카메라에 담고 나서 걸어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사천왕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을 지나가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알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것이 생겼던 것이다. 눈을 부라리고 중생을 내려다보는 그들 앞을 지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작 4-5미터만 지나가면 되기도 하고 사실 옆으로 돌아가도 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족히 10년은 더 지난 그때의 느낌을 여전히 정확하게 해석하긴 어렵지만 두려웠던 마음은 선명하다. 가로지르던 옆으로 우회를 하던 가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난 보람도 없이 무언가에 붙들린 사람처럼 사천왕 앞에서 멈춰 있게 되었다.
날이 조금 더 밝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해가 뜨면 용기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시 따뜻한 민박집 방구석으로도 가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까만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때, 무언가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유성이다!’
떨어지는 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영화처럼 현실이 된다는, 그런 가사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졸업하게 해 주세요’
그땐 그게 그렇게 간절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사천왕이나 부처님이 졸업 못한 박사과정 학생을 불쌍히 여겨 유성을 만나게 해 주고 소원 성취해준 건 아닌가 하는, 웃기지도 않은 해몽을 해보는 것이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던가. 6개월 뒤 무사히 졸업했으니 과연 떨어지는 별을 보면 꼭 절절한 소원 하나는 빌어볼 가치가 있다.
칼로리는 재미있게도 밤 12시가 되면 리셋된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섭취했든지 소비했든지 다음 날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요즘 스마트 기기는 일정한 기간 동안 소비한 누적 칼로리를 알려주지만 그건 사용한 것이고, 새롭게 들어오는 것은 0에서 시작한다. 어제 너무 맛있는 음식을 도저히 지나갈 수 없어 고열량, 고칼로리 식사로 저녁을 든든히 먹고 식곤증으로 아무 운동 없이 잠을 잤다고 해도 다음 날 아침엔 언제 그랬냐는 듯 제로 칼로리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 할 수 있어,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는 다짐과 행동을 가져다주는 기회는 매일 새롭게 리셋할 수 있는 셈이다. 오늘부터 적게 먹으면 되는 거지.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당한 욕심,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있을 때 속된 말로 어제보다 더 자란 나를 만날 수 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마음을 먹고도 며칠 가지 않아 편안함에 안주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온 작심삼일이란 단어가 있지만 작심삼일을 극복하기 위해 3일에 한 번씩 자기와의 약속을 반복하면 된다고 하니 못할 것도 없다. 다음 날이면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칼로리의 마법처럼 "지금부터 다시 시작"을 주문처럼 외워봄 직 하다.
소원과 새해 다짐(약속)은 약간 카테고리가 다르긴 하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나 희망’이라는 점은 동일하니 하나로 그냥 봐도 좋지 싶다. 누구에게나 각자 당시 중요한 목표가 있고 그걸 해결하고자 하는 욕심과 소원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별똥별을 보며 졸업을 빌었던 그 박사과정 학생은 어쨌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실험대 앞에 앉아 실험하고 공부하고 논문을 썼다. 바보 같이 소원 빌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가짐만으로 학위를 받을 수는 없었단 말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소원은 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소원이 노력했다고 다 성취되는 것도 아니다. 의지의 문제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든 안 되는 것이 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현실의 삶이다. 하지만 거창하게 새해 목표를 10개쯤 세워두었을 때, 한 개만 이루더라도 그것은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된다. 아니, 끝까지 가지 못하거나 실패하거나 놓쳐버린 9가지 소원과 약속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그렇게 어제보다, 한 달 전 보다, 작년보다 조금 더 나아진다. 그러니 매년 새 해, 새 날 세워보는 소원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