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강연을 갔다가 받은 질문 중에 ‘작가님은 왜 회사 연구원이 되기로 하셨나요?’를 떠올려 본다. 정확하게는 많은 선택지 중에서 현재 회사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다. 어찌 보면 흔한 질문이다. 면접장에 들어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질문 top 3 중 하나라고 봐도 될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 지원했을 때 채용 면접에 들어오신 팀장님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내 대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현실적으로 활용되는 연구를 하고 싶어서라는 답변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연구기관이 아닌 ‘회사’를 택한 공식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할 때는 나름 교수라는 타이틀을 따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도 없지 않으나 굳이 회사 연구소로 지원을 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 않았겠는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혼자 설 자신이 없었다. 두려웠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석사나 박사를 졸업하려면 연구 테마가 반드시 필요한데 빠를수록 좋다. 연구라는 것이 며칠 열심히 했다고 바로 결과를 얻기 어려운 일이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실수해도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Thesis paper를 쓰고 고칠 수 있는 시간, 실험을 반복해서 확신을 주는 데이터를 얻어야 하는 시간.. 물리적 시간이 확보되어야 그나마 여유 있는 접근이 가능하기에 졸업 주제를 선정하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걸 잡는 방법도 잘 몰랐다. 선배들은 알아서 잘하기에 나도 그 연차가 되면 저절로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겨우 잡은 연구 테마도 실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관적이지 않은 실험 결과로 졸업의 시기를 6개월 연기해야 했다. 혼자 연구하는 방법도 모르고 실험하는 손도 좋지 못한 모습이 스스로를 실망 시켰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박사라는 타이틀이 내게 합당한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03년의 가을과 겨울은 유달리 혹독했다.
연구가 즐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긴 시간을 학교와 실험실에서 보내면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연구 자체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게 알량한 자존심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4년, 대학원 6년, 딱 스무 살부터 서른까지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았는데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었지 않았을까. 아니 이렇게 말하면 너무 비참하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잠재된 인식 속의 어느 한 켠에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겠지만 여전히 연구의 결과물을 고민할 때 때려치우고 싶기보다는 왜 그럴까를 고민할 줄 아는 것을 보면 싫어하는 마음 <<<<<<< 좋아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와 털어놓지만 현실적으로는 대전을 떠나고 싶은 명분도 있었다. 서울 쪽으로 가고 싶은 욕망, 그리고 몇 군데 지원 가능한 회사 중에서 마침 대학 동문이 가장 많이 포진한 회사였다는 점이 끌렸다. 적어도 나를 이끌어 주고 새로운 곳에서 안착하게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면접관들에겐 참 죄송한 일이지만 회사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이해도 없이 무작정 (요새 말로는 무지성) 지원했기에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이었다. 떨어지면 어디든 가겠지라는, 참 대책 없는 서른 살이었다.
그러니까 앞서 면접장에서 거창한 이유와 명분으로 치장을 했지만 사실은 어쩌다 보니 할 줄 아는 것이 연구이고 그걸 살려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여기였으니까요, 라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맞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그걸 당당하게 말할 기회와 이유도 없거니와 설사 그런 기회가 생기더라도 부끄러운 면이 살짝 있어서 대충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들도 설득하기 쉽고 긴 시간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은 것이 바로 ‘세상에 도움 되는 연구의 결과물을 얻기 위함’ 정도로 옷을 입힌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학술학회에 참석을 하면 대학의 연구자들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다. 이제 회사원이 다 된 까닭에 저런 연구 해봤자 돈도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자신의 발견을 쉽게 상업화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수님들 참 순진하시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발견을 타인과 진지하게 토론하고 무엇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코멘트를 남기는 누군가를 볼 때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게 연구자의 본질이란 생각에 잠시나마 회사의 후광을 입고 뻐기는 마음이 들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님께서 현재 계시는 회사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아서 나만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었던 학생의 평이다.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시절뿐이겠나.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 - 갈피를 못 잡는 - 은 끝나지 않는다. 물론 당시엔 당시의 중요한 고민이 있다. 사는 것은 나이나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쨌거나 물어본 사람 입장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 있는 회사 선택의 이유가 역설적으로 위안을 주었다면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지 싶다.
심채경 작가(이자 박사)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나도 한 때는 이런 낭만적인 연구를 꿈꾼 적이 있었지. 물론 제목처럼 책 내용은 낭만보다는 치열한 현실 연구자의 삶을 적어 내려간다. 엄마 또는 여성 과학자인 그의 삶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영역이라 더욱 헤아리기 어렵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밤새워 프로포잘을 쓰고, 학회 참가비를 받기 위해 영수증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가야 하는 현실의 삶은 연구자 이전에 자본주의 사회의 룰을 따라야 하는 일반 직장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감히 낭만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직 사기업의 회사 연구자로서의 자기기만이자, 순수 연구자라는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과 부러움의 표현이다. 그러니 부디 나의 이런 글을 혹시라도 보신다면 화내지 않으시길 바랄 뿐이다.
이제 와서 케케묵은 이야기보따리 중에서 나의 화장품 회사 입사 사연을 풀어놓을 이유는 사실... 없다. 20여 년 가까이 된 일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까. 그러나 유독 그 질문이 다시 떠오른 것은 우리네 삶이 계획한 대로 멋지게 흘러가지는 않더라, 주어진 현실의 몇 가지 기회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그 결과가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 가며 움직이더라는 단순한 순리로 흘러가는 것을 깨우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리라.
“My mom always said life wa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Forest Gu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