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로 가득 찬 인생
최근에 방영된 유퀴즈에서 지하철 택배원 이야기를 보았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지하철 택배(퀵) 일을 하시는데 출연한 것이다. 지나가다가 본 아내가 대뜸 지하철 택배라는 것이 있냐고 묻는다. 예전에 먼 곳에서 케이크를 주문하려고 알아보다가 발견한 적이 있어 얼추 알고만 있었다. 찾아보니 배송원이 지하철로 이동해서 물건을 받고, 역시 지하철로 배송지까지 전달해 주는 일이라 한다. 발품 팔아 돈 버는 직업이다.
출연한 할아버지의 나이가 여든이 넘는다. 하루 2-3만 원의 수입에도 무척 행복하다는 그분의 말씀. 무엇보다 매일 블로그에 기록을 하신다니 열정과 노력이 대단하여 감탄하였다. 일부러 그의 블로그를 찾아가 보았다. 사진의 양도 엄청 많은데 매일 일이 끝나면 편집을 하고 (포토샵까지!) 글을 쓴다고 하신다. 현재 3천3백 개 이상의 글이 있다. 족히 9년 이상의 기록이다. 이런 그를 알아본 곳은 비단 유퀴즈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방송과 매체를 통해 소개가 된 적이 있단다.
그의 삶이 우리네 일상과 큰 차이가 있는가? 아니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사는 평범한 이웃이다. 일하면서 방문한 곳, 배달을 위해 지나치면서 만나는 풍경, 계절의 바뀜에 대한 소회.. 누구나 비슷하게 사는 삶, 말 그대로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루의 기록을 그렇게 치열하게 남긴 까닭은 무엇인가. 그 이유에 가슴 아프면서 공감이 되었다. 사업 실패로 온 기억상실 때문에 ‘잊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일상의 기록을 남겨 둔다는 것이다. 지금도 과거의 어느 순간은 여전히 기억에 없다 한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영원하지도, 단단하지도, 그리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때론 자기중심적으로 편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다. 일부러 잊고 싶은 기억도 있고, 온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잊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다. 그 무엇이든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나 희석되고 바래지는 기억의 끝은 아쉽지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물가물해지는 인생의 단편은 결국 하나의 점이 되겠지만 크기와 무관하게, 기억의 선명함과 상관 없이 스스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 시켜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큰 사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통째로 기억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감히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인생을 도둑맞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의 의지를 따르지 않고, 자연의 섭리와 무관하게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다.
지긋한 연세에 부단한 노력의 결실을 쌓아가는 조용문 할아버지를 보며 한편으로 나의 글과 브런치와 일상다반사의 평온한 삶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직은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더 많은 나이지만 언젠가 돌아보면 무릇 허무해져 있지 않을까. 이렇게 글을 통해 인생을 기록해 나가는 행위의 가치란, 평범한 하루가 주는 감사함과 그걸 차마 깨닫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아닐까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