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한 마디를 존중할 이유

by nay

’… 그래서 이렇게 하려고요’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엥, 이렇게 쉽게 허락을요? 조금 고민하는 척은 해주셔야’

‘자기가 충분히 고민하고 왔겠지’


언젠가 상무님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고민해서 현재 최선의 답을 찾아낸 뒤에 찾아가 나눈 대화였다. 임원과의 대화는 아무리 과거부터 알아 온 사이라고 해도 긴장하기 마련이면서도 안 받아들이면 말고라는 마음이 일부 있긴 했지만, 막상 너무 쉽게 고민이 해소되면 허탈하기도 하다. 모든 대화가 이렇게 부드럽게,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점은 ‘당신이 충분히 좋은 답을 찾기 위해 들인 시간을 존중하겠다’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마음이다.


A가 상담을 요청하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요구를 받은 터였다. 그런 일은 안 해도 되지요, 안 하겠다고 해요! 이렇게 답을 줬다. 그런데 잠시 뒤 A에게 업무를 요청했던 B 역시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B는 과제 리더로서 고민을 한 끝에 A에게 일을 맡긴 것인데 거절은 당해 당황스럽다는 얘기였다.


졸지에 각자의 이유가 명확한 두 사람의 사연을 듣고 보니 중간에서 내가 의견을 꽤 경솔하게 주었구나 싶었다. A와 B 모두 나름의 명분이 있는 상황이라 어쩌면 서로의 입장을 정리해 볼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누구 하나 즉흥적이고 기분에 따라 이 일을 할래, 안 할래 할만한 사람들은 아니니 나와 의견을 나누기 전에 분명 충분히 고민을 했을 터였다. 그러한 성향을 내가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급하게 답을 내리기보다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아 그런가요, 왜 그 사람이 일을 맡겼을지 생각해 봤나요, 조율을 할만한 여지는 없던가요, 이런 말이 더 적당했을 것이다.


최근에 갑작스레 일을 하나 떠맡게 되었다. 원래 담당인 사람이 있었는데 사정 상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어 대체자가 필요했다. 상무님은 나를 불러 앉혀 놓고 조곤조곤 설명을 한 뒤, 그래서 네가 해주면 좋겠어! 이런 말씀을 하는데 면전에서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상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도저히 맞지 않는 일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할 여지는 남겨 두었다). 요청에 대해 예스라고 답을 한 이유는 임원이거나 상사라는 이유보다는, 업무를 누가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적임자를 떠올리고, 결정하는데 들어간 그의 시간과 고민에 대해 나 역시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이나 고민의 깊이도 중요하지만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자체의 존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나의 가치관이나 업무를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면 때로는 상사나 동료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소통에는 당연히 상대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누군가 나를 조용히 찾아와 고민을 말하는 순간, 나를 배려하고 걱정하는 조언을 해주는 순간, 미안하지만 네가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하는 순간을 귀찮아하거나 고깝게 보지 말 것이다. 상대가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던진 말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고 충분히 존중해 줄 가치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배려하는 직장인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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