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어떻게 배우는가

조직의 선후배가 희미해지는 것에 대한 생각.

by nay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특히 이공계 전공의 후배들이 만약 나에게 '회사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대학원 졸업을 위해 자기 논문을 깊숙하게 파던 사람은 (옆에서 도움을 받긴 해도) 혼자 일을 완수하는 방법을 배운다. 교수가 되어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을 1인 회사라고 생각한다.


반면 회사의 일은 사람과 사람, 또는 부서와 부서 사이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이 보통이다. 언젠가 브런치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듯이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밸류체인에서 협업은 필수다. 현재 하는 업무가 유독 협업이 많은 성격이라 지난 몇 개월 사이에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었다. 일의 다양성도 배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협상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서 한 편으론 축복이고 한 편으론 매우 피곤한 일이다. 협상을 하는 것은 특히 마음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본의 아니게 협의의 대상자를 판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A는 매우 정확하게 필요한 단계(프로세스)를 처리한다. B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A와 B는 같은 부서에 있음에도, 그래서 하는 일이 비슷함에도 일 처리에 차이가 있다. 작은 프로세스 하나에 대해 이해도와 준비된 상태가 다르다보니 으레 의뢰를 하겠다, 필요한 것이 있으니 만나자 연락이 오면 내 마음은 두 가지로 나뉜다. 만남 자체가 걱정이 되는 사람, 많이 챙겨야겠다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드는 사람, 편하게 일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사람.. 이렇게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깊이 들어갈 것 없이 의뢰서라는 문서 작성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같은 부서에 있지만) 일처리를 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매우 달랐다. 왜 그럴까 생각의 끝에 “일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질문이 떠올랐다.


On the job training은 속성 과정이다. 신입사원에게 부서의 일을 짧은 시간 동안 맛보기로 제공해주고, 그중 일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깊게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수의 일, 사수가 관여한 프로젝트나 수명 업무를 조금 나누어 주거나, 옆에서 관찰하면서 배울 수 있다.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깊게 배운다는 표현을 했지만 사실 깊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고작 1-2개월짜리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배울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대체 나는 어떻게 일을 배웠을까 돌아보았다. “하다 보니 그냥 익혀지더라, 부딪히면서 깨닫는 것이 조직이고 회사의 업무”, 어이없게도 이런 결론이 나왔다. 실무는 원래 그런 것일까. 선배를 통해 배운 것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 다만 개별의 업무를 알려주긴 해도 큰 그림을 설명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약간의 눈칫밥과 경력으로 윗사람이 '아'하면 '어여오요'는 아니더라도, '어' 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구나 싶다. 그게 효율적이진 않아도 나름 장점은 스스로 배운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 번 익히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있을 테고.


지금 회사에선 직급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공식적으론 없어졌다) 예전에 직급 승진을 하면 교육을 받았다. 그건 해당 직급에게 기대하는 회사의 눈높이를 전달하는 교육이었다. 직급이 있던 시절, 중간 이상의 위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사가 '당신들은 이제 노사로 따지면 노 보다는 사에 가까워진 겁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런 교육은 실무와는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조직(생활)에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느낌은 있었다. 지금은 무슨 교육이 있는지 알 수 조차 없다. 필수교육, 법정교육이란 것 외에 나를 성장시키는, 일을 배우는 그런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친구들은 직급과 역할, 조직 내에서의 행동에 대해 누구에게 배우지? 나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교육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입사했을 때 옆 부서 동기들의 아침 루틴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출근 시간이 되면 그 부서에 입사한 타 팀의 동기들까지 모두 모여서 함께 아침인사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인데, 그 당시에도 요즘 시대에 저런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야?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때가 어느 때인데 이런 과거 지향적인 관습이 남아있나 의심했었다. 작은 일화지만 사수와 후배라는 지독한 위계질서, 도제 시스템을 보고 경악한 것이다. 당연히 요즘은 그런 것이 없다.

다만 없어도 너무 없어져서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당당하게 내놓으시오 하는 자세이고, 정작 도움을 주면 보따리 맡겨 놓은 것 찾아간 모양처럼 고맙다 라는 말 한마디 듣기 어렵다. 최근 어떤 자료가 필요하다길래 '왜 필요하신지 설명해 주면 고맙겠다' 질문을 했더니 아예 말이 없다. 사람 뻘쭘하게 말이지. 세상 많은 일 중에서 내 일이 제일 중요한 것은 안다. 하나의 완성품을 위해 열심히 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는 것, 연구를 깊숙하게 파는 것이 소중하기만 하고, 동료에 대한 존중은 후순위로 밀린 것 같다. 정작 회사의 일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꼰대라 불러도 좋다. 과거가 좋았다는 감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니까 거기에 맞게 바뀌는 것은 맞지만 기본조차 무너져 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선배가 후배를 붙잡아 놓고 일 하는 방법에 대해 훈계나 조언이라도 할라치면 꼰대 소리 나올까 두려운 시절이다. 하긴, 이제는 예전처럼 누군가를 이끌어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사라져서,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를 바라기도 한다. 일로 만났으니 적어도 해결해야 할 일은 잘 되도록 하는 것, 그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도 그냥 적당히 묻고 가는 태도가 굳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일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잘 알려주지 않는 것 같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옆자리를 터 놓고 칸막이를 없애지만 정작 동료와 나누는 대화의 무게 중심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을 배우는 과정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고 찾아야 할까. 직급이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동료라는 개념이 반갑긴 하지만 한 편으로 선배로서 후배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당위성, 후배는 선배를 통해 일을 배우는 태도조차 사라지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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