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성과는 아닙니다

by nay

본사에서 박소연 작가를 초대한 북 토크가 있었다. 연구소 생활이 좋지만 이럴 땐 내심 본사 근무가 부럽다. 고맙게도 녹화 방송을 공유해 주었기에 점심 이후 나른한 시간에 시간 내서 잘 보았다.


“해야 할 일을 한 결과를 성과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소위 연차는 해마다 먹지만 경력은 잘 찌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마케터가 마케팅을, 재무 담당이 재무 업무를, 연구원이 연구개발을 단지 ‘했다’는 것 만으로는 조직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이다. 혹시 스스로 볼 때 내 위치에서 충실하게 일을 열심히 했는데 해마다 평가가 기대만큼 좋지 않다거나, 자신에 대한 평판이 별로라고 생각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이다. 할 일 하라고 해서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해야 하는 일은 당신의 의무이자 역할이고 완수했어야 할 과업이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내 준 숙제 풀이하면 '참 잘했어요'였다. 직장에선 숙제는 당연히 풀어야 하는 것이고, 때론 스스로 문제를 내고 풀어보겠다고 손 들어야 인정해주고 좋아한다. 설마 그걸 모를까 싶지만 연말이 되면 단지 OOO을 완료했다며 성과가 아닌 결과만 나열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매우 빈번하다(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물론 할 일이 성과는 아니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함에도 무조건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을 단지 개인의 역량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부서마다 주요한 역할이 있기 마련이고 어떤 팀은 충실하게 결과를 잘 내주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조직에서 누군가는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데, 그건 정말 ‘해야 하는 일들의 총합’이라서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meet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못하면 티가 나지만 잘하면 원래 그랬어야 하는 수준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것과 비슷하다. 말장난 같지만 회사의 일은 그런 것이 많다. 따라서 인정과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개인과 조직의 역할을 잘 아는, 리더의 균형 잡힌 시각과 업무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꼭 마음에 새겨둘 것이 있다. 높은 분들이 좋아하는 건, 나를 평가하는 권한이 있는 윗사람이 바라는 건 열심히 to do list의 항목을 지워나갔다는 것이 아니다. (상사의 위치에서) 어디 가서 내 조직의 성과로 한 마디라도 더 어필할 수 있는 건 새로운 무엇이다. 덕분에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 마땅한 어떤 부서가 있다면, 그들은 해야 할 일만 했어도 성과로 자랑이 된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어도 때론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담당의 관점

리더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부서의 특성상 해야 할 일이나 정해진 과업의 완수에 대해, 담당자 입장에서 이것만 잘 끝내면 성과라고 내세울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들도 잘 안다. 그러면서 성과 시즌에 미팅을 해보면 뭘 발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왜 이 일을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어필한다. 때로는 내가 묻고 싶다. 일상의 일, 해야 할 일을 성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을 들였는지 말이다.


리더의 관점

앞서 얘기했듯 이것을 단지 개인의 역량이나 불만의 영역으로만 연결하지 말자. 그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완료가 필요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과 행동의 에너지가 고갈됨에 있다. 리더는 할 일의 리스트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주고 그중 꼭 완료되어야 할 것을 정해주면 좋다. 간혹 담당자의 집중이 지나쳐 자기 일만 바라보고 주변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연차나 역량에 따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리더의 역할은 담당자가 과업을 끝내기만 기다렸다가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 이전에, 업무량을 조절하고 번아웃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재정의 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양비론으로 결론이 맺어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조직의 중간 위치에서 보면 양쪽 - 리더와 구성원, 관리자와 피 관리자, 평가자와 피평가자 - 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된다. 결국 박소연 작가 말마따나 인정받으려면 열심히 일만 하지는 말지어다. 조직의 성공을 이끌거나 반대로 실패를 막아내는 어떤 것,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 되든 남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이든 '조직에 기여하였다고 내세울 수 있는 남다른 무언가'를 연말에 성과라고 끄적일 수 있는 무얼 하려고 해야 한다. 회사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스스로 질문하고 그중 하나를 제대로 멋지게 해결해 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성과가 탄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꼭 빅샷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말자. 이미 잘 마련된 밥상처럼 보여도 빈 그릇이나 부족한 반찬은 있다. 그걸 채우고자 한다면 성과로 인정받을 것이다.

keyword
이전 22화동료의 한 마디를 존중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