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Sep 26. 2022

뱅갈 고무나무가 알려 준 리더십

작년 말 아내가 뱅갈 고무나무를 구해 왔다. 세상 이렇게 키우기 쉬운 것이 없다고 한다. 본인은 연쇄 살식(물)마인 관계로 솔직히 집에 새로운 반려식물 들여놓기가 매우 겁난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 보여주는 놀라운 힘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데려왔을 때 잠시 새 잎이 나는 듯하다가 멈춘 이후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마침 겨울철이라 그런가 보다, 봄여름 오면 좀 나아지겠지 기대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번 연쇄살식마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도통 자랄 생각을 안 하더니 어쩐 일인지 여름부터 노란 이파리를 보이는 것이었다. 물을 자주 줘서 그런가 싶어 확인하면 꽤 말라 있고, 물을 주면 금세 밑으로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무더운 여름에도 시름시름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잎이 떨어져 정말 속상하고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고수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렸더니 진단이 다양하다. 물이 적은 거 아니냐, 온도는 적당하냐, 분갈이해야 한다 등등. 그런데 그중 눈에 띄는 답은 이것이었다.


‘긴 막대기로 식물 주변을 여러 번 찔러 주고 물을 2리터 주시오(화분 사이즈에 따라 주는 양도 달랐다). 그리고 2주 뒤에 같은 방식으로. 그러면 살아날 것이니’

‘뱅갈 고무나무는 샤워기로 비 오듯이 줘야 합니다. 그냥 물을 부어주지 마세요’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지막 간절한 시도로 시키는 대로 구멍을 뚫어주고 샤워기로 흠뻑 물을 주니 다음 날부터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새 잎이라고는 보여주지 않던 이 친구가 여기저기서 새로운 잎사귀를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새로 나온 잎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자라서 자세히 안 보면 원래 있던 잎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수없이 생각하고, 많은 책을 읽고 또 실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현장에서 경험해 보지만 매번 실패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득 이제는 자리를 잡고 잘 자라는 뱅갈 고무나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식물마다 잘 키우는 방법이 다르듯이 하나의 통일된 방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흙이 말랐는지 매번 꼼꼼하게 체크하고 물을 준 것은 맞지만 그 방법이 틀렸었다. 건조할 때 물을 그냥 쓱 부어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쉽게 빠져버린 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샤워기라는 다른 방법으로 처방했을 때 비로소 이 친구는 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는 걸 몰랐던 것은 바로 나였다. 세상에 식물 키울 때 물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르지 않게, 그렇다고 매번 너무 축축하게 주어도 안된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식물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그가 처한 상태와 자라는 상황,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수많은 이론이 언제나 맞지 않는 것은 리더와 팔로워가 처한 환경과 조직 문화,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의 차이 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물만 잘 주면 무럭무럭 자랄 거예요, 이런 가이드가 대부분의 식물 관리에 맞더라도 건조한 지, 여름인지 겨울인지, 햇볕이나 바람은 많은지 적은 지에 따라 세세하고 미세하게 달라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뱅갈이를 키우는 데 있어 내가 관심이 적었는가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노란 잎을 보이며 앓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일 아침 문안인사드리고 저녁엔 또 괜찮은가 두루 살펴보았었다. 그렇게 들여다본다고 해결된 것은 없었다. 정확한 지식과 방법, 그 식물이 처한 상황에 맞는 물 주기 방법과 같은 디테일의 요소를 챙기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오랫동안 리더로서 경험해 보니 모두에게 적합하면서 통일된 - 획일화된 - 리더십이란 없다. 일반론은 있을지라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디테일한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의 특성과 상황을 이해해주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릴 때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리더가 동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긴밀하게 소통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개인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충분히 키워낼 수 있다. 마치 죽어가는 듯 보였던, 앞으로 쓸모 없이 버려질 것으로 여겼던 뱅갈 고무나무에서 새 잎이 마구 자라나는 것처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죽어가던 뱅갈 고무나무의 상태를 빠르게 캐치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과습 피하고 건조하지 않게 하면 살겠지..라는 안일한 태도와 마인드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하던 대로, 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조직의 변화는 요원하다. 그래서 때로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혹시나 아예 죽을까 봐 - 현재의 상태만이라도 그냥 유지해 보자고 - 물을 줄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아예 다른 방법으로 물을 주는 도전을 해볼 가치가 있다.


리더십은 어렵지만 매일매일이 새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싫은 소리 할까요 말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