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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Dec 28. 2022

맺고 끝냄이 필요한 시간

저는 일의 시작부터 참여하여 중간 과정에서 의논하고, 마지막에도 한 자락 숟가락을 얹어요. 특히 잘 마무리하도록 만드는 작업에는 신경을 씁니다. 시작에는 끝이 있고, 선발 투수가 있으면 마무리 투수가 있듯이 크던 작던 문을 열고 들어간 업무는 어떻게든 문을 닫아줘야 합니다.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는 자기 기량으로 상대편 타자를 압도하고 공격을 막으면 되지만, 회사의 마무리 투수는 적당한 선에서 종료 버튼을 누르자고 설득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적당한 때 마무리 하지 못한 채 붕 뜬 프로젝트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인의 업무를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예전에 괜찮은 테마의 연구가 흐지부지 되는 걸 보고 아까워한 적도 있습니다. 끝내자고 설득해도 미련인지 자존심인지 모를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과제를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알아서 할테니 그냥 두라는 말은 왜 하는 걸까요?).


의사결정의 마일스톤 설정

Rule No. 1. 적절한 지점에 도착하면 판단할 것. 이 길로 갈지, 저 길로 갈지, 아니면 멈출지. 좋은게 좋은 거.. 라는 업무는 없습니다. Flow Chart에는 <만약 … 라면> 하는 세모 모양의 도형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나 업무를 진행하는 흐름을 만드세요. 그리고 중요한 지점에 이 도형을 놓습니다. 도형 안에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건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요. 수율은 좋은가요? 단가 기준은 통과했나요? 효능은 확보되었나요? 일정한 때가 되면 또는 중간 결과를 얻으면 예/아니요(go/stop) 중에서 하나의 답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과를 판단하려면 충분한 실험과 데이터, 수치가 필요합니다. 

의사결정의 질문을 정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방향이 맞는지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좋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뻔한 거 말고 정말 critic 한 거). 개발을 염두에 둔 경우라면 판단 근거와 통과 기준을 살짝 다르게 두기도 합니다. 시장 상황은 바뀌므로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틀린 것도 생기게 됩니다.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이지요.


연구와 개발을 하나의 몸처럼 묶어서 생각하고, 연구 내용이 개발로 연결되기를 이상적으로 바라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연구는 연구로 묻히기도 하고 개발은 연구와 상관없이 진행될 때가 많습니다. 연구 무용론이 펼쳐지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나쁘게 쓰일 목적이 아니라면 세상 모든 연구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회사에 기여한 게 뭔데?’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기 어려운 적도 많았습니다. 개발자도 비슷한 압박이 있겠지만 그래도 프로덕트라도 있죠. 연구는 실체 없는 눈속임처럼 보이고 자기만족, 정신 승리 이상의 가치를 찾기 어려운 종목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 필요한 건 끝내는 것

정해진 기간 안에 원하는 목표를 얻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은 큽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하기 위한 저의 노하우는 첫째 일의 본질을 다시 따져보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왜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진짜로). 필요하니까 한 건 맞죠. 그런데 왜 필요했는지 깊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다 보면 개인의 관심사 거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처럼 당위성의 수준이 비즈니스의 핵심과 가끔 동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라면 잔인하지만 당장 끊어버리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동안 들어간 시간과 자원이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두 번째 필요한 건 욕먹을 각오입니다. 미련은 남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추가로 하나만 더 하면 데이터가 달라질 텐데. 귀가 얇아서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게, 아니 끌려 다니는 되는 과제를 봅니다. 좋은 말 다 듣고 반영하면 언제 목적지에 도착하겠어요. 동료 중에 아주 단호하게 이건 아닙니다, 하고 멋지게 끊어내는 모습을 본 적 있습니다. 당분간 왜 그랬냐 주변에서 말은 많겠지만 필요하다면 욕 좀 먹어도 되지요.


그리고 또 하나, 어쨌든 마무리를 하기로 결정한 이상 적절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합니다. 누구에게? 마무리를 허락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요. 대부분은 전결권을 가진 사람이나 상사가 되겠습니다. 결재를 올렸다가 의외의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결재 라인이 복잡하거나 높은 위치에 계신 분까지 올라갈 경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결과물이 별로 좋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레 걱정합니다.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매번 결재자들을 만나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주로 결재 의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런 걸 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이렇다. 알아보니 대안이 있다. 이건 한계가 있으니 요 정도에서 마무리 하자‘ 등등. 이런 정도의 메모만 언급해 두어도 최종 결재자는 그렇군, 하고 이해할 것입니다. 물론 꼭 대면 보고가 필요한 일도 있지만 그런 건 손에 꼽습니다.


투명한 기준의 필요성

중간 관리자로서 일을 맺고 끊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담당자들만큼이나 최종 관리자들도 의외로 단호하지 못한 면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Good guy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Bad guy가 되지 않는 좋은 방법은 규칙을 만들고 지키면 되는 겁니다. 규칙은 지켜야 하고, 그러면 예측 가능해 집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노래 가사는 무의미합니다. 마음 가는 대로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정하면 안 됩니다. 높은 분의 마음에 따라 오늘은 해도 되고 내일은 안되는 식은 곤란합니다. 명문화된 기준을 설정하세요. 

아직 판단이 어렵다고요? 시간과 경험을 쌓으세요. 데이터가 쌓이면 케이스별로 정리하여 카테고리화해 놓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구조화된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무엇보다 동료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기준을 공유하세요. 누구나 알 수 있게 투명한 기준이 설정된다면 합의점을 찾는 것이 수월해질 겁니다.



덧.

2022년이 이렇게 저물어 가네요. 저의 글을 보러 와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또 달려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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