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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an 11. 2023

뒤에서 버텨주는 것도 리더의 덕목

답을 찾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답’ 자체에 매몰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런 식이다.

‘누군가에게 고민이 있다’

‘그러면 리더인 내가 고민을 풀어줘야겠다’

‘고민을 정의하고’

‘그 답을 찾아서 제시하면 되겠지?’


결과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있다면, 아는 선에서 답을 주거나 같이 고민하면 된다. 동료와의 갈등이 있다면 내용을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잘 풀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본다. 극단적으로는 조직 이동이란 답이 나올 수도 있고, 바람직하게는 서로 오해가 있었다면 대화로 이해하는 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도 귀찮다면 너의 고민은 너의 것, 이렇게 무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리더들도 있는 편이고.


위의 예시처럼 구체적인 수준의 질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현실적인 답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레벨이 다른 고민에 대해서는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연구원으로서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비전이 없어서 불안하다 같은 설문 결과가 나왔을 때,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에 대한 답이 다음과 같다면 어떨까?


자 여러분, 연구원의 비전은

-꾸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근면 성실한 연구자

-회사에서 승진해서 매니저나 임원

-열심히 연구하고 성과를 얻어 대학의 교수되기

-다른 회사로 이직 또는 창업


위와 같은 다양한 경로가 있으니 그중 방향을 잘 정해서 해보라는 것이 되겠다. 모든 사람의 눈높이와 상황에 맞는 답을 주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위의 답은 어쩐지 연차와 경력이 낮은 친구들에겐 오, 이런 커리어 관리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가이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난 “왜 사람들이 비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WHY로 일하라고 하면서 자꾸 HOW, WHAT에 집중한다. 우린 때때로 문제 정의를 정확하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표면에 드러난 몇 가지 단어나 상황에만 주목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본질에 다가가기 전에 성급하게 떠오른 아이디어로 답을 내리려고 한다. 보통 자기가 만족하는 답의 그림이 그려지면 편향적인 사고는 더욱 굳어진다. 답을 냈다는 사실이나 행위 자체에 만족하게 되므로 더더욱 이면에 숨은 진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줄어드는 셈이다.


위의 4가지 방향의 예시를 충분히 알고 있는, 회사 밥 좀 먹은 사람의 반론을 해보자면 이렇다. 매니저 되는 방향을 모르기보다는, 그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벽이 있어 막혔을 때 ‘비전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대학 교수가 되어 보려고 논문 쓰고 지원도 해 보았지만, 막상 채용해 주는 곳이 없어 앞으로 회사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 주어진 일을 집중해서 하고 있지만 성과에 대한 챌린지가 있을 때마다 나의 비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현실적 갈등, 고민이 단순하게 비전으로 압축되는 것도 답을 내는데 어려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리더라면 다양한 이해관계들,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잘 다독여 주려고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들도 상위 리더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승진 원한다고 다 팀장 만들 수 없고, 다른 회사 가고 싶다고 어디 꽂아줄 위치도 아니다. 그럼에도 위로하고 같이 생각을 나눠보는 것이 맞다. 그러면 좀 더 진실과 본질에 다가갈 기회가 있다. 정서적 지지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리더가 항상 명쾌한 답을 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뒤에서 밀어주고 정서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그것이, 고민하는 후배와 동료들을 위한 다른 이름의 비전 제시일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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