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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17. 2023

나 같은 사람 세상에 또 없습니다.

작년부터 회사 내부의 실적 집계와 관리 기준 변화에 따라 애매한 시기에 동료 평가가 진행 중이다. 360도 평가라고도 불리는, 다수의 동료가 나의 강점과 보완점을 리뷰하는 것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미 알고 있지만 바꾸지 않는 속성이 많다. 피드백을 받아서 바뀌려는 의지가 촉발되고 성장하는 여부가 더 중요할 것이다. 나에 대한 의견을 직시하는 것이 괴로운 만큼,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과정은 매번 새롭고 불편하고 힘들다. 꽤 많은 횟수와 기간의 경험이 있음에도 그렇다. 리더 위치에 있으니 몇 명이나 되는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주다 보면 현타가 온다. 내가 뭐길래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슬금슬금 올라올 즈음에 비로소 평가의 마무리가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줄 때는 명확한 기준이 중요하다. 해당하는 사람의 경력과 연차, 기대하는 역할, 보여주어야 하는 퍼포먼스의 수준, 내가 관찰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배제하는 용기 등 다양한 항목들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동료 나누어서 인기 투표하듯, 팬레터나 저주의 주문을 보내듯 리뷰할 수 있다. 객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도 힘들뿐더러 지속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는 자세도 어렵다. 어제까지는 괜찮은 생각이 들었던 사람에게 오늘 갑자기 성과에 실망하고 나쁜 의견을 날려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조한 평가자가 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한두 사람에 대해 집중해서 피드백을 남기다 보면 정서적으로 피곤해져서 하루에 많은 양을 할 수 없다.


그러한 객관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려면 조직이나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역할과 수준에 대해 사전 합의가 무척 중요하다. 목표 설정에는 나만 원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동의가 있었어야 한다. 일을 시작할 때, 우리 이렇게 합시다, 올해는 이런 자세로 일을 합시다 하고 약속을 하고, 그걸 잘 지켰는지 아닌지 꾸준히 관찰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가급적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긴 이야기 끝에 대충, ‘올해도 잘해보자고, 파이팅!’ 정도의 의기투합만이 남다 보면 이렇게 평가 기간에 후회한다.


무엇보다 평가하는 입장에서 내가 만든 기준, 나 혼자 생각한 그의 역할과 역량의 오류에 빠지면 곤란하다. 나라면 이렇게 안 할 텐데.. 하는 생각을 미루어 기대하면 힘든 건 평가자 자신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항상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나라면 미리 숙제나 공부 끝내고 놀텐데..’ 아들을 볼 때마다 하는 소리이다. 자신은 어릴 때 숙제나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그와 달리 아들은 상당히 미루는 편이라 약속한 시기가 도래해야 겨우 움직여서 끝을 낸다.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엄마는 성에 안 차니 불안하고 화가 나고 실망하는 것이 역력하다. 그 상황이 격해지면 엄마와 아들이 결국 한 판 붙는다. 각자의 입장 차이가 조율되지 않은 채 서로 자기 얘기만 하다 보니 그렇다. 볼 때마다 나는 내 배에서 나왔을 뿐, 저 아이는 우리랑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조언한다. 물론 나라고 이렇게 늘 객관적이고 평정심 유지하지는 못한다.


여하튼 내가 낳은 자식도 이렇게 다를진대 어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를 내 마음에 쏙 들게 행동하도록 바랄 수 있겠는가. 다행히 회사, 조직의 논리는 이와 조금 다르니 위안이 된다. 회사를 다니는 만큼 서로 지켜야 할 ’공동의 약속‘이 있다는 점이다. 각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뭐 하러 여기에 있겠는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기 위해 모인 조직이다. 그러니 그걸 기준으로 판단하고 격려하면서 조언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다. 다만 자기 기준과 편견이 너무 강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타인이 나와 같지 않음을 책망하지는 말지어다. 그건 좋은 판단 기준이 아니기도 하고, 세상엔 나 같은 사람 어디에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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