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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an 31. 2023

실내 자전거를 타는 거창한 이야기.

흔히 인생을 말할 때 마라톤에 비유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예전엔 마라톤을 한 번만 뛰면 되었어도 될 텐데, 이제는 두 번은 뛰어야 할 태세다. 인생 이모작이니 삼모작이니 하는 것이 어쩐지 반갑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긴 레이스 중간에 물을 공급받는 마라톤 마냥 인생의 달리기에는 자원의 준비와 보충이 절실한 까닭이다.


인생에 비유하는 클리셰적 활용과 별개로 내 주변엔 정말 마라톤을 뛴 사람들이 있다. 입사 동기인 한 형은 나보다 많은 나이에도 마라톤뿐만 아니라 수영과 사이클을 포함하는 철인 3종을 나가는 강철 체력이다. 한겨울에도 쉬지 않고 달리기를 하고 바다 수영을 하니 대단하다. 싱가포르 근무 당시 한 동료는 국제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을 해왔고, 실제로 참가도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보스턴 마라톤 대회 같은 꽤 유명한 이벤트였다. 싱가포르는 적도 근처에 딱 붙은 나라라서 해만 뜨면 바로 습하고 더워지는 곳이다. 그런 나라에서 아침저녁으로 연습을 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매번 놀라곤 했었다.


어렸을 땐 티브이에서 해주는 마라톤 중계를 가끔 보았었다. 42.195km라는 거리를 뛰어간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느끼기에 쉽지 않다. 언뜻 생각해도 무척 긴 거리를 2시간 조금 더 걸려서 완주해 내는 선수들을 보면 인간의 능력이 놀랍다. 진짜 놀랐던 것은 선수들의 달리기는 무척이나 빨라서 100미터를 대략 17초 정도로 뛴다는 점이다. 이런 속도는 어지간한 일반인들이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는 속도와 다름없다. 화면으로 보는 뜀박질의 속도는 체감이 잘 안 되는 편이지만, 일반인이 옆에서 같이 뛰면 금세 지쳐 뒤처질 것이 분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의 소설 제목은 익히 알지만 읽어본 적 없다. 유명 작가지만 그냥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마라토너라는 것, 그리고 무척이나 진심이란 사실에 대해 최근 알게 되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에는 제목처럼 달리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작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 자기를 단련하고 멈추어 있지 않도록 채근하며 일상을 다듬어 가는 한 유명 작가의 진정 어린 노력이 마음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다짐을 ‘달리기’라는 방법으로 다져 나가는 삶의 태도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실내 자전거를 타 왔다. 앞서 말한 마라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저는 마라톤을 합니다’ 하면 대단히 보이는데, ’ 저는 실내 자전거를 탑니다 ‘하는 건 모양새가 좀 빠진다. 여하튼 요즘 유행하는 즈위프트 같은 첨단 장비가 달렸다면 더 좋겠으나 그저 그런, 유명 헬스트레이너의 이름이 박힌 오래된 제품이다. 오래전에 구입한 것이라 햇빛에 노출된 부위는 누렇게 색이 변했고 손잡이는 날긋해졌다. 하지만 기능 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별다른 교체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때 잠깐 새로운 제품을 알아봤으나 아직도 바꾸지 못했다.


그전에는 걷기를 열심히 했는데 코로나 이후에 실내 활동이 많아지면서 자전거 타기는 시나브로 운동 친구가 되었다. 나의 자전거 타기 목적도 하루키와 비슷하다. 누구보다 더 빠르게 치고 나가기 위한 경쟁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정확히는 살찌는 것이 싫어서 의식적으로 한다. 자리에 앉아 있을 때 튀어나온 뱃살이 주는 부담감이 싫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일부러 자전거 안장에 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목표 운동량(칼로리)을 채우기 위해 어쨌든 시작해 보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해서 받는 리워드라고 해야 애플워치의 운동 링이 전부인데 그게 또 넛지가 된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어지간하면 자전거를 탄다. 아, 최근에는 골프 연습을 하느라 조금 뜸하긴 했다. 그러나 배가 조금이라도 더부룩하면 무조건 자전거 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배가 꺼지는 느낌이 들어야 만족스럽다. 이런 상황은 회식이 있는 날에도 이어진다. 좀 늦게 집에 오더라도, 조금이라도 바퀴를 돌려보는 것이다. 그러면 괜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운동의 효과를 내자면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오래 타는 것이 마땅하지만 적절한 강도로 한다. 예전에 과하게 했다가 무릎이 아파 본 이후로는 강도를 조절하는 요령을 익혔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짐짓 ’ 실내 자전거를 탈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샘솟는 기분이 든다. 아니, 이미 다 해버렸나?


자기를 다듬어 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루키가 인터뷰했던, 매일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직업 마라토너조차도, ’ 오늘은 쉬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도 집에 가면 저녁 먹고 널브러져 있고 싶다. 배 좀 튀어나오면 어때. 중년의 그것은 인격이라 하지 않았나. 그러나 편한 것의 유혹을 이겨내는 힘,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은 나 자신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분을 갖게 도와준다. 그리고 조금 쑥스럽고 거창하지만 나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된다. 오늘 이렇게 글을 썼으니 나의 실내 자전거 타기는 더 열심히 해야 할 루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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