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입사 동기였다.
최근엔 신입 사원 공채 제도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2004년만 해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뽑고, 약 한 달여간 집합 교육을 시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회사라는 새로운 시작에서 만나게 된 A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큰 덩치만큼이나 호탕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를 떠올리면 ‘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어젖히던 모습이 당장 떠오른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요즘 말로는 인싸 기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A를 좋아했다. A도 나를 챙겨 주었다. 입사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를 안타까워하며 다른 동기와 엮어 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정확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엔 서로 조금 더 챙겨주었던 듯하다. A의 결혼을 맞아 취미 생활이었던 사진 기사 노릇을 자처했다. 물론 본식 사진가는 있었고 그저 스냅사진을 조금 찍었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기술연구원이라는 큰 조직에 함께 있었지만 실무를 하는 연구소는 각자 달랐다. A는 본인의 팀장과 소장에게 인정받는 연구원으로 성장했다. 인정과 성장 때문이었는지 그를 둘러싼 별로 좋지 않은 얘기가 조금씩 들려왔다. A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성격도 일부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작은 소문이겠거니 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인정을 질투하고 때로는 그냥 사림이 싫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어느 날, A는 퇴사를 결심했다. 오랜 꿈이 있었다고 했다. 친구였기에, 항상 들어왔던 것이기에 나도 잘 아는 것이었다. 믿음이 강했던 사람이라 항상 언젠가 선교 활동을 멋지게 하고 싶다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난다고 했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연구소에서는 퇴사할 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퇴사 인사를 전체 메일로 남기곤 한다. 그도 다를 바 없이 전체 메일을 남겼다. 그런데 그것 말고, 또 다른 메일이 와 있었다. 일부 선택된 사람들에게 따로 보낸 기나긴 퇴사의 변이었다. 내용은 길었으나 요약하자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A의 결정을 존중하고 한 편으로 그런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얘기는 그가 한국의 다른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같은 업을 하는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 한 번은 자신이 떠난 팀 사람들을 불러서 저녁을 샀으며 꽤 비싼 수입차를 타고 나타났더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 A는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 어쩐지 만나고 싶지 않았다. 불편했다. 몇 번을 거절했지만 결국 용인의 한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계속 피하는 것도 이상하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암튼 복잡한 감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A는 왜 자신의 선택이 번복되었는지 설명했다. 묻지 않았으나 들려주었기에 가만히 들었다. 왜 그는 나를 설득해야 했을까?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해 주는 응원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나. 하지만 나는 왜 굳이 그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까? 웃고는 있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어딘가 겉돌았다. 그는 나에게 ‘너는 회사가 어울리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빨리 학교의 교수가 되어라’는 충고를 던졌다. 그러더니만 나중엔 5년이 지나도 내가 여전히 지금 회사에 있다면, 자기가 있는 회사로 나를 데려갈 거라는 말도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의미였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한 때는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였던 A.
그를 내 마음속에서 멀리 두기 시작한 것은 일종의 배신감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의 일이란, 운명이란 어찌 될지 모르는 법이다. 신앙에 대한 신념으로 훌쩍 해외로 갔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A 스스로도 미리 예건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의 말마따나, '가슴이 뛰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기에' 선택을 번복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선택은 자유 의지이다. 타인이 무어라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다만 나는 아직도 A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따로 보냈던 구구절절한 메일의 내용과,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응원했던 누군가를 단 몇 달 만에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회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설득 사이의 괴리를 떠올리면, 여전히 그를 신뢰할 수 없다. 멀리서 들어도 알 수 있었던 그의 큰 웃음소리만큼 존재감이 확실했던 사람. 어쩌면 A는 내 인생 최초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거두게 만든 사람이다.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