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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n 08. 2016

기술의 지향점-고객을 생각할 때

몇 주 전, 우리 팀으로 작은 기기 하나가 전달되어 일종의 기술 검토를 부탁 받았다. 스마트폰에 연결하여 피부 진단을 해주는 컨셉의 기기인데, 말이 좋아 그렇지 사실 작은 확대경 수준의 도구였다. 기술적으로 따지자면 본격적인 진단은 사실 상 어려운 도구. 전문적인 기계를 사용해서 측정을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개발과 양산은 다 끝나고 실제 현장에서 사용 시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의견을 주는 정도의 의뢰라서 내심 실망했다. 기왕이면 더 좋은 품질로 하면 좋지 않나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돌려보낸 후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오늘 우연히 그 도구의 쓰임새가 어떤지 알게 되었다. 여전히 품질은 아쉽다. 그러나 반응은 너무 좋다. 무엇보다 이 도구를 통해 제품 판매로 자연스럽게 연결 되고 있고, 판매 사원들의 자부심도 한층 올라갔음을 짧은 글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가장 놀라운 것은 고객들은 이렇게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서 매우 만족한다는 호평 일색. 


전문적이라니, 세상에. 


이런 반응과 실적은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다.

기술 전문직으로서 당연히 추구하는 기술적 가치와 수준은 당연히 높아야겠지만, 실제 그것이 고객에게 받아들여질 때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만약 이 도구를 개발할 때 기술자인 우리들에게 먼저 시작하라고 했으면, 아니 중간에 함께 얘기하자고 했으면 이런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도구가 개발될 수 있었을까? 장담컨데 아직도 개발 난항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또는 개발이 끝났을지라도 내가 원하던 스펙의 제품이 아니어서 불만스러울 것이다.

지금 성공적인 활동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 도구가 사용되는 공간, 대상이 되는 고객, 도구의 사용자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잘 맞물린 것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영업 현장에서 기술직 관점의 고품질/정밀 진단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고객이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설득의 포인트에 맞는 도구(기술)가 필요하다. 우리가 가치를 폄하했던 이 도구가 적절히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기술자들이 이 문제를 풀고자 고민했다면 적어도 기술 자체의 편협함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영업 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이런 분석이 아니란 말이다.. (이미지출처: Getty images)


기술을 이용하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내 업무의 관점을 바꿀 필요는 없다. 이번 사례를 너무 확대 해석하여 기술만능주의에 주는 일침으로 보아도 안된다. 그러나 분명 고객 접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 기술개발의 방향성이 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제품과 기술이 제공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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