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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가치에 대한 별별잡담

by nay

1.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저녁 마감 시간에 찾아가면 꽤 많은 식품류를 세일 가격으로 판매한다. 적게는 3-40%, 많게는 6-70%까지. 아내는 종종 이 ‘타임 세일’을 노린다. 품질이 완전히 같은 제품이라도 사는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알랭 드 보통) 중, 물류에 대해 다루는 챕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꽤 많은 제품들이 성격에 따라 3일 또는 2주 안에는 재고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한다. 유통 기한이니 소비 기한이니 하는 표현은 상품의 가치가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과일처럼 눈에 띄게 시간 흐름과 상품 가치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도 있고, 우유처럼 먹어 보기 전까지는 신선함의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생산이나 수확, 유통, 그리고 도소매를 거치며 내 식탁 위에 올려지기 전까지,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의 함수’와 크게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

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이 있다. 시간의 가치와 중요성을 물질적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은, 개념적인 대상조차도 물질로 치환할 수 있다는 조상들의 경험에서 오는 지혜와 맞닿아 있다. 복잡한 과학적, 철학적 개념을 다 차치하고 시간을 금과 동일 시 할 수 있는 명제는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은유적 표현이고 시간의 가치를 현물로 이해시키기 위한 적극적 표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3.

어젯밤에 아이가 숙제를 하려고 딥러닝이란 주제에 대해 조사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지간한 어른들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니 오죽했으랴. 이런저런 백업 자료들을 조사하고 읽어보면서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어떤 영상 하나를 보았더니 그제야 단번에 이해도가 올라가더라,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책과 글을 통해 어려운 논리나 개념을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구조화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영상은 그걸 친절하게 다 작업해서 전달해 주는 것 같다”

“그러니 글을 통해 이해하는 것을 멀리하는 대신 간단하고 쉽게 해결하려는 접근을 선호하는 것 아니냐”

이런 내 말을 듣고 그녀는 말한다.

“어떡해, 시간은 없고 할 건 많은데”


4.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지위나 역할, 신분, 상항에 따라 시간의 가치, 쓰임 그리고 용도는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유통 기한이 임박한 세일 상품이 경제성의 이유로 가치를 더 갖는 반면, 누군가는 몇 만 원짜리 망고 한 박스를 신선하다는 이유로 거침없이 산다.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한꺼번에 정해진 기간 안에 해결하려다 보면 중학생 아이는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하는 숙제량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 부족인 경우도 있다. 시간은 낭비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낭비는 아까운 줄 모르고 써버리는 행위인데 물질이 아닌 개념적 사물에 낭비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건, ‘시간은 금’이라는 명제의 당연함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어쩌면 정말로 개념이 아니라 물질이 맞는 게 아닐까.


5.

무르익을 시간은 재촉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남의 손을 빌리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 시간 없다고,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면서 생각의 타래를 지어보는 시간마저 아깝게 생각하지는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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