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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l 14. 2024

회장님 멜론 맛

운동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상가의 한 과일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내가 말하길, 누군가 이 집에서 파는 멜론이 특가로 떴는데 맛도 좋고 쓰레기 나오지 않게 컷팅까지 해 준다고 글을 올렸다고 했다. ‘하나 살까?’ 하는 물음에, 집에 과일이 좀 넉넉하게 있는 편이긴 한데.. 했지만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의 발걸음은 과일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이었으나 어쩐지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만.


과연 누군가의 말처럼 5500원 특가로 파는 멜론이 있었다. 크기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경험 상 이 집 과일이 꽤 괜찮았단 걸 알기에, 온 김에 사갈까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멜론에는 ‘회장님 멜론’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보통의 멜론과 모양이 조금 달라 보인다.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일반 멜론과 달리 겉에 무늬가 덜 선명하고 연한 색을 띠었다. 딴에는 속으로 어디 마을 회장님네에서 생산하는 건가 보다 추측했다. 가격도 9500원이라 일반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이거 드셔 보셨어요?”


호기심 많은 아내가 먼저 물어본 것에 대한 답변이었는지, 아니면 말 많은 과일 가게 주인이 먼저 선수를 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비슷한 걸 먹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 겉모습만 봐서는 약간 허니듀처럼 생긴 것도 같기도 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기가 막히다.


“이게 당도가 진짜 높고 달아서 아무한테나 파는 제품이 아니었고요, 기업의 회장님들만 겨우 드실 정도로 소량 생산해서 납품되던 거랍니다. 키우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일반 사람들도 사 먹을 정도로 나오긴 해요. 저희도 겨우 조금 받아서 딱 2주 동안만 파는 거예요”


아, 그래서 회장님 멜론이었구나. 아무 상관도 없는 마을 회장님을 떠올린 나 자신이 웃겼다.

“먹어보면 다른 거 못 드세요”

“그리고 다른 멜론에 비해 잘라서 보관해더 무르지 않고, 물도 생기지 않아요”


그래요? 그러면… 그냥 일반 멜론 주세요! 하하. 일반 멜론도 충분히 맛있는데 그걸 뛰어넘는다니 약간 속는 기분도 들었고, 멜론이 거기서 거기지 하는 의심도 있었다. 게다가 올라간 입맛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 법이다. 정말 맛있어서 다른 멜론은 성에 차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나와는 달리, 하나 잘라 주세요 하는 아내의 주문 덕분에 우리도 그 귀하다는 회장님 멜론을 한 통 잘라서 집에 들고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난 상술에 넘어간 기분이 여전했다. 적어도 한 조각 먹기 전까지는.


의심을 가득 가진 채, 잘려 있는 멜론이 차곡차곡 놓인 통의 뚜껑을 여니 단내가 확 올라온다. 오오, 기대감이 확 올라갔다. 한 덩이를 꺼내 입에 넣으니 순식간에 녹는다. 단맛이 입 안에 확 퍼진다. 과연 주인의 자랑처럼 여타 멜론의 당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멜론은 멜론이라 어차피 오묘하고 신비로운 무엇은 아니었으나 확실히 맛있긴 했다. 아유 좋네 좋아. 회장님들은 남몰래 이런 좋은 걸 드셨단 말이지?


한두 개 먹고 나니, 많지도 않은 고당도 멜론이 살짝 아깝기도 하여 조금씩 아껴 먹기로 하였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몇 개 꺼내어 주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달아! 이거 뭐야?’. 역시 맛있는 것은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구나. 보관 중인 멜론을 통째로 내어 주었다가는 1분 만에 순삭 될 판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회장님이 동남아 출장 가시면 항상 두리안을 찾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 의전하는 부서는 동선을 짤 때 저녁 식사 후 두리안 맛집을 꼭 넣었다는 그런 얘기. 호불호가 강한 과일이지만 회장님들은 남들은 잘 먹어 보기 어려운 귀한 것, 맛있는 것, 좋은 것 보며 다니는구나 싶었다.


비록 기업의 회장님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 ‘회장님 멜론’ 먹어 본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귀하던 과일이 평준화되어 서민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음에 기뻐해야 하려나. 아니지, 회장님 입장에선 이제 일반 사람들도 즐기는 과일은 희소성이 떨어지니 다른 걸 찾으려나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채 만 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사흘 동안 나는 회장님 식도락 체험을 톡톡히 즐겼다. 올여름, 잊히지 않을 회장님 멜론 맛.


ps. 글을 다 쓰고 검색을 해 보니, '하니원멜론'이 바로 회장님 멜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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