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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by nay

언젠가 선배와의 카풀 때문에 고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글이 Daum 직장인 섹션에 올라가게 되어 여태까지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은근 걱정이 되기도 했다. 브런치는 아는 사람만 알지만 Daum은 거의 누구나 접속할 수 있으니 혹시라도 그 글을 내가 아는 누가 볼까봐 말이다. 남들 보라고 쓸 때는 언제고, 이젠 볼까봐 걱정이라니 이율배반적인 나란 사람. 어쨋든 그 글에 댓글이 달리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 분들이 있었다. 그걸로는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기분. 고심 끝에 이 얘기를 해도 괜찮은 막역한 동료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늘어놨다. 이러이러해서 상황이 어떻고, 결국 나 힘들다고.


그 동료가 막 웃으면서 내 인생이 시트콤 같단다.


그의 제안은 명료했다. 진심을 담아서 얘기하면 되지 않겠냐. 물론 약간의 technical한 팁도 같이 조언해 주었다. 그와 얘기한 결론은, 그 동안 해오던 것이 있고 관계도 고려했을 때 아예 안하는 건 조금 눈치도 보이니, 일주일 중 두 번 정도는 카풀 가능하게 제안하자 였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 차분한 마음으로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내가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일주일에 한 번이건 두 번이건 횟수가 문제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진심을 가득 담은) 내 메일의 결론은 상황이 이러하다.. 힘들다. (고로 더 이상 카풀이 어려울 것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로 맺음 지었다.


결과는? 선배의 답변 메일이 왔다. 그 이후 아직까지 카풀을 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해 찜찜한 기분이 남아있긴 하다. 호의가 될 수 있을 행동을 내가 거절한 까닭? 아니면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까닭?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러나 대신 얻은 것이 있다. 내 출근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어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




이 일이 있은 후 우연히 제목을 보고 이건 내 얘기야!라고 할 수 있는 책이 있어 요즘 읽고 있다.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란다.

"상대에 대한 거절 이전에 '내 마음 속의 진실'을 전하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거절의 의미다. 나는 이런 것이 불편하다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전달하는 것이 거절이지, 단순히 NO, 싫다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저자는 그냥 마냥 싫은 경우도 특별히 이유 달지 말고 싫다고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얼마 전에 카풀 때문에 고민했던 것, 그리고 그 갈등을 풀기 위해 진심으로 마음을 전달한 것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남에게 싫은 말 하기 어려운 건 무엇때문일까?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배려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싫은 말을 해야하는,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인지부조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었다. 어, 이렇게 해도 되네?를 알게 된거다. 그러니 앞으로는 거절도 잘 할 줄 아는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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