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의 시간에서 존재의 시간으로

by nay

최근 Yoo 작가님의 ‘나는 별이 아닌 반딧불’이라는 글 덕분에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잠시 가지게 되었다. 그 글에 따르면, 직장 초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빛나는 별이라 생각하며 기대를 갖고 일을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꽤 많은 일을 했음에도 ‘성취’라고 부를 수 있는 결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또한 주변 동료들이 더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보며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다만 우리가 모두 다 ‘별’ 일 필요는 없으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반딧불이라도 괜찮다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별’이라고 부르는 우주의 존재는 말 그대로 ‘스스로 빛나는’ 항성을 의미한다. 우주에 떠있다고 해서 모두 별이 아니다. 태양은 대표적인 별이다. 과학적으로는 내부에서 끊임없이 핵융합이 일어나고 그 에너지를 빛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반면 지구 같은 행성은 타오르지 않고 별의 곁을 도는 존재로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이다.


나의 주니어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한때 나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어깨에 뽕을 한껏 넣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별이 아닐까 또는 적어도 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많은 일들을 해냈고 그걸로 성취감을 맛보았으며, 조직으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이제와 알 수 있는 건 나를 빛나게 했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과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회사의 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그땐 몰랐다. 무엇보다 나는 여러 상황들을 겪으며 항상 ‘나 자신을 증명’해 내는 노력에 파묻혀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초보자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존재가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어필하려고 애쓴다. 남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이런 초보자의 치기 어린 욕심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기 자신을 증명해 낼 수 없다면, 그게 조직 안에서든 아니면 1인 기업이든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또한 그런 욕심 없이 성장의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다.


문제는 나의 증명이 늘 우선되는 경우, 그 욕심과 욕망에 빠질 수 있는 때다. 경력과 연차가 쌓였음에도 여전히 자기 증명에만 급급하다면 그는 항상 남의 눈치를 살피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직 안에서 나의 존재감이란 타인의 평판과 인정이 뒷받침될 때 더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연구자의 증명은 남들의 인정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세운 가설이 과학적으로 옳은지 아닌지 설명될 수 있을 때도 가능하다. 그러나 보통 회사에서는 특히 인사권과 평가권을 가진 상사의 눈과 기준에서 증명되어야 결국 인정이라는 마침표를 찍는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한때는 자신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금 내려놓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유롭게, 진정성 있게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런 변화를 겪어야 비로소 다른 이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행성의 존재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로, 혹은 자유로운 반딧불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아니, 그보다 눈치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저 그림 속에서 나의 시간은 지금 어디쯤일까. 곰곰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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