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본질에 관한 생각
회사 입장에서 최종 고객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 (B2C)가 되거나 또 다른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 (B2B)가 될 것이다. 가내 수공업이 아닌 이상, 일이라는 건 조직 안에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최종적인 제품/서비스가 탄생하기까지 내부에서 수많은 조율과 협력이 필요하다. Value chain이 형성되고 누군가는 제일 앞에 선다. 어느 팀은 다른 팀의 업무 내용을 받아서 진행해야 한다.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움직이긴 어렵다. 특히 어느 수준 이상의 규모가 되면 서로 얽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흔히 내부 고객이라는 말을 쓴다. 내 일의 결과물이 다른 팀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대 팀을 고객으로 생각하란 뜻이다. 때로는 내부 고객의 VOC를 들어라, 연말 평가의 대상자에 내부 고객을 포함하자라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그러나 내부 고객의 말이나 의견이 최종 고객을 반드시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영업은 영업의 입장에서 자기가 팔아야 할 제품에 필요한 내용을 원하고, 마케터는 마케터대로 포인트를 잡기 원하며, 제품개발자는 기술 관점에서 일을 만들어간다. 그럼에도 내부 고객을 중요하게 대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부 고객은 공급자-수혜자 관점에서 보면 수혜자이고, 수혜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혜자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제품이 잘 팔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너네가 도움 주지 않아도 우리가 잘해서 그런거야!), 문제가 있을 경우 공급자의 공급이 부족하거나 모자랐기 때문이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필요하다고 하는 말은 들어주는 편이 좋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내부 고객이라는 말은 적당한가? 나 역시 당연하게 써온 표현들, 예를 들어 내부 고객의 만족도, 내부 고객의 VOC... 이런 말들이 일의 본질을 흐리는 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객이란 말이 그렇게 설득적이지 않다. 농담처럼 회사 안에서도 부서 간 관계에서 갑과 을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자조적인 농담이야 말로 본질을 흐리고 생산적인 생각을 막는 요소이다.
우리는 협력자이자 조력자여야 한다. 수혜자의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공급자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는 없는가? 언제까지 내놓으라고 닥달하지 말자. 필요하다고 아이처럼 조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찾아볼 생각은 왜 하지 않는걸까 (내부 수혜자가 내부 공급자에게 돈을 지불한다면(!) 고객이라고 감히 정의할 수 있다). 같은 조직/회사 안에서 갑-을이란 없어야 한다. 공급자 역시 내가 하는 일이 무엇 때문인지 잘 돌아보아야 한다. '내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Value chain 상에서 상호 관계이며 대등한 관계다. 그걸 망각하는 순간, 본질은 흐려지고 합당한 목표는 갈 길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