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정보와 선택의 불안
2017년에는 유난히 긴 연휴가 두 번 있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는 지난 연말 항공권을 부지런히 알아보았다. 특가로 뜨는 항공권을 잡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더니 결국 원하는 가격, 원하는 날짜의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항공권만 구하면 될 줄 알았더니 그 다음은 호텔 예약이라는 난관이 있었다. 숙소는 아무래도 전체적인 관광, 이동 일정과 연계되다 보니 아무 곳이나 적당히 잡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도 역시나 발빠른 검색을 통해 이 곳은 어때? 여기는 조식이 괜찮다던데.. 여긴 다음 날 출국할 때 가까워서 좋아.. 등등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호텔 선정과 예약도 완료.
그 다음은? 보다 상세한 일정. 그러나 아직 시간이 많은 관계로 그건 뒤로 미루기로 했다. 다만 본인이 비행편, 호텔 다 했으니 일정은 나에게 맡겼다. 그래요, 일정은 내가 하지요.
몇 일 (아니 몇 주?) 동안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을 번갈아가며 여행 계획과 정보를 얻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내의 이런 노력은 '합리적 소비'를 위한 방편인 것이다. 한껏 여유 있는 예산이라면 비행기도 특가 기다릴 이유 없고, 호텔도 한 두 군데 포인트 쌓아가며 묵으면 그만일게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 안에서 효율을 높이자니 검색 또 검색이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특가를 잡지 못하면 안될 것 같은 불안함, 더 싼 곳이 있는데 그 사이트를 몰라서 남보다 1만원이라도 더 비싸게 하룻밤을 자면 손해 보는 느낌. 최저가, 특가, 스팟세일... 현명한 소비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우리를 더 괴롭게 만드는 정보들.
선택의 역설 (Paradox of Choice)이란 것이 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고객은 그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기회를 갖는다. 따라서 더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후보가 있으면 본인의 선택이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선택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불안함 등으로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 역설이 떠올랐다. 선택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임의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아내 스스로 찾은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엄청난 정보들 속에서 스스로 선택지를 만들었다.
아내의 노력을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노력을 존중한다. 그러나 정보를 얻기 위한 과정이 즐겁고 신나는 일이 아닌, 정신적 스트레스로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쩌면 과거에는 알 수 없던 (그래서 알 필요도 없었던) 너무 과한 정보들로 인한 불안감은 필요악이 아닐까. 그리고 너무 쉽게 정보들을 불러올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에 주는 영향과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