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Mar 07. 2017

사람이 제일이다

회사 연구원을 위한 조언-3

대학 입학 시 학과를 정하는 것처럼 대학원을 갈 때는 자신이 원하는 '방'을 고를 수 있다 (여기서 방이란 실험실을 말한다. 연구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세포방, 면역방 등으로 애칭(?)을 붙이기도 한다). 뽑을 수 있는 정원(TO)이 정해져 있는 경우 경쟁을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어떤 분야의 일을 할 지에 대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셈이다. 직장의 업무란 조금 다르다. 이름과 하는 일이 정확히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모호한 이름의 조직명도 있다. 따라서 직장에 지원하다보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원서를 내기도 한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이런 저런 소스를 통해 어느 부서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오기도 하지만, 정작 배치는 원하는 곳과는 다르게 되기도 한다. 현재 나와 같이 일하는 한 사람도 배경지식과 대학원 생활과는 전혀 다른 부서에서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선택권은 조금 줄어든다. 

내가 일하는 부서와 마찬가지로 상사나 동료직원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 특히 이제 대학원을 떠나 막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낯선 환경에 노출된다. 대학원은 사회 생활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학교 생활의 연장선이다. 비슷한 생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일 수 밖에 없다. 반면 회사는 완전한 조직생활 그 자체다. 그리고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heterogeneous 하고, 소위 머리가 큰 사람들이라 수시로 충돌과 갈등이 일어난다. 그런 조직생활 속에서 남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돌아본다. 손꼽고 싶은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나를 괴롭게 만들던 사람 vs. 나에게 힘을 주던 사람

입사하고 배치 받은 부서의 첫 사수를 잊을 수 없다. 훗날 나의 팀장이 되기도 했으니 글쎄 이걸 인연이라고 부를지 악연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매주 업무회의를 했다. 기분이 좋다가도 회의 전 날이 되면 다운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당일 아침엔 너무너무너무너무 출근이 싫었다. 진심이다. 숨막히던 회의 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뭐 그런 만큼 일을 배우고 성장할 기회였다면 이렇게 안좋은 기억만이 남진 않았을 것이다. 일을 잘 하던 분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리딩하는데는 역량이 부족했던 그 분. 

호시탐탐 본인의 몫을 챙기려던 동료도 있었다. 늘 우리부서를 많이 괴롭게 했다. 워낙 많은 요구를 한 까닭이다. 한 번은 같이 연구한 내용을 논문으로 쓰기로 했다. 그 사람과 내가 공동 1저자를 하기로 약속 했는데 출판된 논문을 보니 본인이 단독으로 1저자를 가져갔더라. 그 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다시는 이 인간과 상종하나 봐라, 했는데 곧 퇴사를 해서 복수의 기회(?)를 갖지 못한게 내심 아쉽다. 


물론 주변에는 늘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가끔 차 한잔하면서 힘든 일은 없는지, 회사생활에 대한 팁을 알 려준 선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일하면서 크게 겹친 적 없었지만 볼 때마다 주먹을 쥐며 화이팅을 외쳐주던 선배도 있었다. 늘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아, 멋진 선배란 저런 것이구나. 나도 저런 선 배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 사람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은 달랐지만 회사 생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힘이 되는 선배였다. 그 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낙담했던 기억이 있다. 워낙 잘나가던 사람이라 예견된 수순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을 다독 였으나 정신적으로 많이 의존했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

팀장이나 연구소장 정도 되면 어떤지 아는가? 나야 아직 그런 위치가 아니라 모르지만 말이 많아지는 건 fact인 것 같다. 말이 많은 사람이 승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나름 진지한 고찰을 한 결과, '외로워서'라는 답이 나왔다. 연차가 쌓여갈수록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어제까지 옆자리 동료였던 사람이 팀장으로 발령 나면 어쩔 수 없는 거리 감이 생긴다. 그 거리감만큼 윗사람들은 부하직원들과 소통의 기회 가 적어진다. 괜히 직원들과 얘기할 기회라도 생기면 자꾸 말하고 싶 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얘기가 흘러흘러 ‘나 때는 말이야’ 나 실적에 대한 훈계와 쪼임으로 연결되지만 않는다면 좋겠다. 어쨌 거나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에 대한 부담은 높고 직원들과 편하게 이 야기하기는 어려운, 외로운 자리가 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기댈 수 있는, 아니 그냥 편하게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상대 자체가 몇 되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편견 없는 사람, 때로는 내 편이 되어 같이 욕도 해주는 사람, 업무의 어려움이 있을 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사람.. 이런 동료들이 주변에 있으면 마냥 힘이 된다. 때로는 그런 동료들이 있어 회사 다니는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 


적을 만들지 말자

입사해서 첫 팀장이었던 분의 말이 떠오른다. 

사내에서 모두가 친구일 수는 없지만 적을 만들지는 마라. 


이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났다. 1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나 이 말을 곰곰히 해석해 보니 적이란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직 생활을 하다보니 오늘 안좋은 관계였던 사람과 내일 갑자기 협업을 해야할 때도 있고, 마냥 좋게 지내던 사람이 간혹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너무 자신만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 본의 아니게 적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럴 필요 없다. 회사 생활을 정글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다른 상대는 피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되도록 많은 인맥을 쌓자. 이건 사실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 03화 '나'의 브랜드를 갖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