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정의하는 리더의 역할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창조적인 일과 문제 해결형 일 중 어느 것의 비중이 더 높을까?
내 경험상 이 문제의 대답은 문제 해결형이다.
복잡한 현업에서 잠시 물러나 관찰해 보자. 새로운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 발생한 문제점들을 복구하고 보수하는 일의 양이 만만치 않다. 왜 문제들이 생기는가? 원인은 참 다양하다. 연구자 사이의 이해관계에서 생기기도 하고, 연구와 실제 생산 간의 차이에서, 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의 관리에서 문제점들은 하나 둘 생긴다. 때로는 법이 바뀌어 어제까지 되던 것이 오늘은 안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이런 일의 성격은 어떤가. 여유있게 처리하면 될까? 아니다. 항상 시급하다.
시급성과 중요성을 X, Y 축으로 4분면을 그려보면 어느 일을 제일 먼저 해야하는지 많이 들었을 것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 다음은? 중요한 일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 마련이다. 즉 문제가 되는 일부터 처리해야 내가 (또는 조직이)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우선 순위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자원 투자 - 시간, 돈, 인력 - 를 하려면 따로 그 자원들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야할 일과 하면 좋은 일 사이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해야할 일과 하면 좋은 일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정답은 중요성을 논하기 전에 조직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해야할' 과 '하면 좋은' 일의 구체적 정의가 필요하다. 해야할 일은 must인 요소가 강한 반면, 하면 좋은 일은 뭔가 extra의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해야할 일은 조직,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일게다. 그러니 자원 투자의 여력이 크지 않은 경우 해야할 일 (어쩌면 중요하고 시급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실 나도 해야할 일이 가장 우선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해야할 일의 정의가 각자 다르다는 점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타 부서의 입장에서 우리 조직에 바라는 일의 정의가 나와 달랐던 것이다. 내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남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괴리를 좁히지 않으면 오해의 씨앗은 계속 남는다. 그런 점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하면 좋은 일'에서 우리가 늘 바라는 혁신의 기회가 나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누가 조직의 일을 정해야 하나? 리더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황 논리로서 해야할 일을 규정하지 말고 조직의 명분으로서 역할을 정확히 해주면 된다. 물론 조직 성격에 따라 해야할 일이 더 중요하고 우선인 경우가 반드시 있다. 또는 해야할 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는 조직도 있다. 리더가여기에 균형을 잡아주지 않으면, 일년 내내 급한 일만 열심히 해주다가 끝날 수도 있다. 특히 말과 행동이 다르면 구성원들이 혼란에 빠진다. 수비수에게 넌 왜 공격을 안하냐고 묻지 말고, 수비수는 수비수답게, 공격수는 공격수답게 일할 수 있는 역할을 잘 분리해 주면 된다. 본질은 어떻게 창의적으로 수비 또는 공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