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편백의 텅 빈 열매, 산책
도서관 열람실 창문으로 싱싱하고 한들한들한 봄이 들어왔다.
책에 고개를 박고 있던 머리카락이 소심히 날린다.
대나무, 소나무, 편백나무 등 키 큰 나무가 수영구도서관을 장벽처럼 둘러 있어, 책 속에 꽂혀있던 눈이 고개를 들 때마다 몽골 초원이다.
팔뚝 타투가 귀여운 1층 '카페 수' 청년 바리스타에게, 뜨겁게 해달라고 요구한 카페라테를 텀블러에 받아 뒷산 산책에 나선다. 기대되는 시간으로도 개미 눈물만큼 행복이 또 옥 똑~ 떨어진다.
행복은 돈이 많아, 사랑이 많아, 먹을 게 많아 오기도 하지만,
몇 권의 시집과 에세이, 소설을 읽고, 2,700원(텀블러 사용 시 300원 할인)에 뜨거운 카페라테를 마시고, 뒤뜰에 빛 쏘는 햇살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와 꽃을 볼 때도 온다.
오솔길은 약간 습기를 머금었고, 하늘로 차 오른 편백나무, 연륜에 주름 진 상수리나무, 청춘 빨 소나무, 꽃 이쁜 부용나무가 쭉 펴거나 굽어진 가지로 아니 가슴으로 반긴다.
편백나무 열매는 품었던 씨앗을 풍장(風葬)하여 텅 빈 가슴으로 사는 것도 기쁨임을 보여주었고,
햇살 가득한 경사길 무덤은 겨울이 숨겨놓은 붓꽃, 양지꽃, 조개나물을 지천으로 피워내 이름 모르는 죽은 자도 봄으로 달래주고 있다.
시인 구르몽은 '시몬의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 '시몬, 눈이 네 목처럼 흰 것'을 보았지만, 산길의 아름다운 꽃, 향내, 씨앗을 날려버린 편백나무의 열매는 왜 보지 못했을까?.
시몬, 봄은 네 사랑처럼 사탕 하다.
<봄, 네 사랑처럼 사탕 하다>
도서관 열람실 창문으로 개나리, 벚꽃이 걸어왔다.
헤어질 때와 태어날 것을 아는 계절은 거룩한 유전자 품어
낙엽 지고, 눈 내려 허기진 겨울에도 무서워 떨거나 울지 않더니
이쁘게 새 옷 입혀 돌려보낸 봄으로 기쁘게 살라며 등 두드려주네.
오솔길 폐목 계단 오를 때마다
숲 숲 사이로 벚꽃이 우박만하게 날리고
길 섶 대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꽃 핀 부용나무는
팔을 펴거나 굽혀 안아주니 오랜만에 만난 동무 같아라
꽃비로 점박이 된 길냥이도 함께 즐기는
찬란한 오후의 권태.
훈장 단 벚꽃나무 당분간 오솔길 골목대장 됐네.
이별이 오랜 헤어짐도 아닌 걸 알기에
편백의 텅 빈 열매는 씨앗을 풍장(風葬)하고도 기뻐했고
죽은 자들도 무덤에 붓꽃, 양지꽃, 조개나물꽃을 피워내니
삶은 잘 살라고 주어진 성스러움
베이고 움츠린 우리들 상처받지 말고 계절이 주는 대로 기쁘게 살자.
우리들의 봄이 눈깔사탕처럼 달콤하니 네 웃음도 사탕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