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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씨 Mar 20. 2017

나의 첫 출근길, 로마행

승선 당일의 추억

2009년 10월 22일


전날 밤부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꾸역꾸역 두어 시간을 채운 뒤,  새벽 6시 알람 종이 울리기 전 먼저 깨어 준비를 한다.


어젯밤 미리 정리해놓은 55킬로나 되는 캐리어를 들고 부산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이 모습을 전날 밤부터 지켜보신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택시를 타는 순간,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신다.


'나영아, 꼭 거기까지 가서 일을 해야겠니?"


남동생이 1년 전 군대를 갈 때도 이렇게 슬프게 울지 않으셨던 거 같다. 난 출근하러 회사에 가는 것뿐인데. 그렇게 슬프실까? 남들은 취직이 안돼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난 버젓이 직장을 구하고 설레서 잠도 못 잘 정도로 기쁜 마음으로 회사에 가는데 말이다.


"엄마, 정말 하고 싶은 일 하러 가는 거야. 재밌을 거고, 무사할 거고, 많이 보고, 느끼고 올게! 걱정 마, 바이 바이"


헤어짐에 슬픈 엄마의 얼굴을 보고도, 난 철없는 꼬마처럼, 그날은 어떤 날보다 해맑게 웃었다.  


5시간 후면 도착하는 인천공항.

버스 안에 있는 내내 마음이 불안한지, 들뜬 건지, 손을 만지작, 손톱을 물었다가 뜯었다,  가방을 뒤적이며 여권 확인은 하고 또 하고, 괜스레 여권을 펼쳐서 비자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인천공항 도착하여,  항공 예약 확인증을 손에 쥐고 수속을 밟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기내 반입 가능 무게에 20킬로나 초과되셨는데요? 어? 그리고 돌아오는 항공권이 없으시네요?"


뒤늦게 깨닫고는 얼른 선원수첩과 LOE도 함께 건넸다. 한국에서는 주민등록증, 해외에선 여권이 나의 신분증이라면 바다에선 선원수첩이 나의 신분증이다.


-바다의 신분증, 나의 선원수첩. 선원수첩에는 내가 선박에서 승하선 하는 모든 기록이 담겨있다. 여권처럼. -



"아, 크루시네요. 수속 처리해드릴게요"  


수속을 마치고, 내 작은 양손에는 로마행 편도 항공권,  10년짜리 C1D 비자가 있는 여권, 선원수첩 그리고 LOE가 있다. 이제 이것들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빌 생각을 하니, 내 작은 양손에 쥐어진 큰 세계를 보고 있으니 그제 서야 안심이 됐는지 눈물이 났다. 두려움과 설렘이 확신과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드디어 난 로마에 있는 Legend of the seas라는 크루즈에 출근하러 출국을 한다. 그리고 로마에서 나의 오래된 친구 라비니아도 만나기로 했다. 라비니아는 공항에서 나와 만나,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먼저 인천에서 일본 나리타로 먼저 가 항공편을 갈아 탄 후 12시간 후 로마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도착 홀에 나갔는데 라비니아가 먼저 달려와서 나를 반겼다.


“나영, 너 드디어 승무원이 됐구나!!!!”


부둥켜 껴안고 한껏 들떠 있는데 라비니아가 말했다.


“아참, 너 호텔 어딘지 궁금해서, 공항 와서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에서 픽업 나온 사람을 찾아 물어보려 했는데, 담당자를 못 찾았어, 너 혹시 담당자 연락처 있어?”


이게 무슨 소리람? 픽업 나오기로 한 부두 에이전트(port agent) 정보를 찾아 라비니아에게 주었고 라비니아가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러나 에이전트는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없다며, 로열캐리비안 레전드호 승선 예정자라면 공항 옆에 있는 호텔에서 묵으니 가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고. 라비니아를 따라 에이전트가 알려준 호텔로 갔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확인을 하는데, 정말 내 이름이 명단에 없는 것이다. 로마 공항에는 오후 5시에 도착했는데, 벌써 시간이 8시가 다되어 갔다. 난 이대로 국제 미아가 되는 건지, 취업 사기를 당한 건지 등 온갖 생각이 들었다. 라비니아가 처음 통화를 했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어 영문을 물었고, 결국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항 옆의 호텔이 아니라, 부두 근처의 호텔인데, 차량을 지금 보내줄 테니 기다리고 했다. 이제야 보내준다고? 호텔에 도착하기 전, 크루즈를 보기 전까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승선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득 차서 오랜만에 만난 라비니아와 즐거운 수다를 떨지도 못하고, 1시간 동안 초조해하며 차를 기다렸고, 호텔로 이동했다. 내가 묵을 호텔은 공항에서 2시간이나 떨어져 있었고, 다음날 크루즈를 승선할 곳과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밤 11시가 다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고, 내일 오전 7시에 픽업하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에이전트 직원은 그냥 사라졌다. 깜깜한 밤, 거리에 불빛 하나 없고, 호텔도 너무 어두웠고, 갑자기 무서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정말 내가 옳은 길로 가는 건가, 내가 조사하고, 보던 그 화려한 크루즈를 타러 가는 게 맞는 건지도 의문스러웠다. 라비니아도 불안한지, 메시지를 보내와서 내 상황을 확인했다.  다음날 오전 7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서 에이전트를 기다리는데, 나와 같이 승선을 할 승무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 정말 크루즈 타러 가는 거 맞는구나’


로마에서 묵었던 호텔, 밤11시에 도착한 이곳은 나에게 마치 귀곡산장과도 같았다.


곧 대형버스가 호텔 앞에 도착했고, 로비에 모인 승무원들이 버스에 올라탄 후 그 버스는 다른 호텔 몇 곳을 더 들러 흩어져 있던 레전드호 승선 예정 승무원들을 픽업했다. 곧 버스 안은 승무원으로 꽉 찼고, 각 다른 나라에서 온 승무원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이런 상황이 너무나 신기했다.

레전드호가 있는 시비타베치아 부두에 가까워 지자 바다에 떠있는 대형 선박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저 배들 중 어떤 배가 내 직장이 될지 기대하고 있는데 저 멀리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로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배구나. 저 배가 이제 내 직장이자, 앞으로 6개월간 살 집이구나. ‘


당시 버스안에서 부두로 가는 길에 찍었던 사진. 날은 흐렸지만, 기분은 맑음이였던, 설렜던 그날.


'반갑다, 레전드,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나의 직장이자, 집이었던 로열캐리비안 인터네셔널의 레전드호



*덧붙이는 글

해외에서 승선하는 경우 반드시 해당 국가에서 픽업하는 사람의 연락처와 픽업하는 에이전트(Ground handler or port agent가 픽업을 준비한다)의 연락처, 묵을 호텔의 정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픽업을 안 나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공항에서 호텔에 가는 방법을 미리 조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항에서 픽업이 나오는 경우가 정상이나 나처럼 당일에 승선하는 승무원들이 너무 많거나, 에이전트의 실수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니, 혹시나 본인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절대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에이전트에 연락을 하고, 동시에 회사에도 상황을 알려야 한다. 각 회사마다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Emergencycontact이 있으니, 반드시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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