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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Dec 05. 2023

110

12.5 

나와 내 그림자에게 


몰입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차창 밖에는 희미한 빛이 넘실거렸다. 행인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먼지가 날렸다. 손바닥에 오종종한 땀이 맺혔다. 비루먹은 개 한 마리가 쫄랑쫄랑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하늘에 달무리가 어리는 듯하다 걷혔다. 나는 숨을 몰아쉰다. 모든 평화는 피 튀기는 달음질, 투쟁. 그 어디쯤에서. 흔들린다, 고요히. 꿈결처럼. 어젯밤엔 적갈색의 얼굴을 흘깃 보았고, 오늘은 파랗게 질린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산다는 것은 때론 술에 취한 듯, 냉기를 뒤집어쓴 듯. 아름아름 변주된다. 알고 있다. 더 앓아야 한다. 겨울은 그런 시간이니까. 

쓴 약 같은 맛이 혀끝에 맴돈다. 담배 연기 속에서 체온을 잃어갈 때, 이완된 눈빛이 은처럼 번쩍였다. 번쩍인다는 것은, 곧 비루하다는 것이다. 그리웠던 순간들은 더는 없다. 지금, 여기만 있다. 이곳에서 나는, 이따금 뒤를 돌아보는 고아처럼. 한 줌의 물을 가로등 불빛 속에 집어넣고, 한 줌의 불을 강가에 던져두었다. 반짝이면서, 더 아픈 것에. 저물면서, 더 빛나는 것들에게. 


바람 분다. 나목이 내 팔뚝 되어 부러진다. 불특정한 공포감이, 훨훨 노닌다. 제 목덜미에 감긴 사슬을 더 거세 끌어당기면서. 나는 내가 없는 곳으로 갈 것이다. (신경성) 더 헐거워지고 쪼그라들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말아라. 살기 싫다면. 오늘의 절망을 희디흰 눈처럼 수놓고. 눈을 감고 몇 초 걸어가리. 나는 가늘고 긴 눈으로, 내 삶을 차갑게 응시한다. 그 외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끝장에 가서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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