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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Dec 06. 2023

111

12.6

풀꽃

 

비 온다. 눅눅한 날. 동시에 묘하게 홀가분한 날이다. 비가 정신을 씻긴다. 빗물에 살 떨리는 추위는 잠깐 가신 듯했다. 상쾌한 실바람 분다. 오랜만에 허리를 곱게 펴 본다. 

길섶 풀들이 비에 눌려 내내 납작했다가 종종 휠휠 노닐었다. 바람아 불어라. 더 흠뻑 흔들리게. 날자. 뽑혀 죽더라도. 날아보자. 속으로 독려했다. 그 사이 풀들 틈새로 유약한 빛이 스미더니 이따금 윤슬처럼 빛나다 다시 홀연히 소멸하였다. 내 취약한 빈약함 사이로. 지독한 고독감 사이로. 이따금 빛이 날아들고.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풀잎이 박동하고 그래서 나는, 이 생을 귀찮게도 의혹하고, 경애하고. 진정한 생은 늘 전위 속에만 있다는 것을. 낱낱이 답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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