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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Dec 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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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거리에서 

 

길 한복판으로 잠행한다. 바람이 뺨을 할퀴고 간다. 바람 덕에 감각은 퇴행하였다. 딱딱한 뺨. 그 외 생은 없다. 어기적어기적, 어영부영 갈 뿐이다. 일전, 눈인지 똥인지 쓰레기인지 하는 게 낭만처럼 날렸다. 눈을 보고 예쁘다 말하는 사람은, 조금 부럽다. 그 천진한 성정은 삶을 다채롭고 아름답게 하리라. 나는 피곤하다. ‘피곤하다’는 이중적 단어처럼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도 없다. 그런 나와 결별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포기해 버리는 것만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삶을 직접 살지 못하고 공상하는 나와, 그런 나를 확 매달아 버리고 싶어 하는 나. 나는 그 둘을 한꺼번에 바라보다가, 그만 환멸해 버린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눈이 내리고, 눈을 보고 예쁘다 말하는 사람이 보이고, 횡단보도 모퉁이에 서서 타코야키 파는 아저씨의 허연 얼굴이 보이고, 캘린더가 한 장 넘어가고, 나목이 바람이 우그러지고, 삶을 향한 깃발이 사방으로 흔들리는 것을 본다. 그 무기력과 회한, 어떤 ‘안녕’의 목소리와, 후드득 눈물 떨어지는 소리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투명한 거울이 끝없는 허상을 비추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언어가 나를 죽이고 언어가 나를 살린다. 생은 이리도 무겁고 가볍다. 아아, 내 삶에는 표정이 있어야 한다, 표정이. 생동감 있는 표정이 있어야 한다. 사는 듯이 살면 안 된다. 나는 언 뺨에 손을 대어 본다. 표면에 뭐가 잔뜩 달렸긴 달렸다. 얼굴에 손을 대면 살아 나오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이 얼굴을 더 얼린다. 이제는 슬픔도 온기를 다 했다. 어디로부터 빼앗겼는지 스스로 소진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둘은 결국 다른 듯 같다. 차라리 나는 더 딱딱하고 검은 밤을 원한다. 더더욱 절박하게 까무러치고 싶다. 소심한 기억의 중량을 들고 삶을 향한 기갈을 훌쩍이며 주체 못 할 격양에 사로잡히는 일. 가난하지만, 그 다정한. 이질적 존재의 설움이 녹아내리는 얼마 동안의 착란. 그것이 내 어설픈 덧없음을 치유할 것이다. 그래, 나는 천천히 녹아서 바닥으로 스며들 것이다. 나는 폐기될 것이다. 그 끝, 청춘의 늪에서 절망이라는 이름의 고개가 똥물을 뒤집어쓴 채 쑤욱 튀어나온다면. 나는 그걸 부둥켜안거나, 똑 따 버릴 것이다. 안녕, 잘 가. 그 이상은 아무 말하지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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