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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Jan 04. 2024

120

1.4

살아있다는 이 부끄러움의 현장에서 새삼 무엇을 체득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길 수 있을까. 적어도 한 사람 가슴속 뭉근히 데워줄 한 마디 내어볼 수 있을까. 사랑인지, 자유인지, 지혜인지. 그런 단어들의 지긋지긋한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을 버리고 다시 생생한 일상의 고통 속으로 돌진할 수 있을까. 탕아처럼 돌아와 회개하듯 쓸 수 있을까. 치솟는 격정이 가라앉으려면 더 멀리 떠나야 한다. 언어의 사슬을 벗어버리고. 깨끗한 볕과 바람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흰 뼈가 통째로 드러나도록, 사르어지도록,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죽어도 내가 남을 수 있다면. 더러운 백지 속만은 아니어야 한다. 나는 백지 속에서 숨 쉬면 안 된다. 내 숨은 눈에 있어야 한다. 내 이름은 바깥에 있어야 한다. 내 정서는 표정에 있어야 한다. 내 마음은 손바닥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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