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귀신
죽이고 싶은 내가 몇 있다
나를 자각한다는 건 나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결함 투성이었을 뿐, 담배나 더 피우면 된다
시간은 충분하다, 없다고 해도 뭐 상관없다
도대체가 시간이란 건 있는가
황량하게 고이는 똥물, 혹은 흰 눈에 비치는 빛 같은 것 밖엔
낙엽 사이로 시체가 누워있다, 불결한 흙덩이
사랑이라는 언어에 현혹된 자아의 평화가 가련하다
그곳에는 알 수 없는 비가 내리고
의식이 어설프게 분리되고
그 사이로 착란이 습격한다
눈을 감으면 번개가 친다
뭔가 흉측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야
내장이 거품을 물면 입에서 바람이 센다
나는 미친 듯이 삶을 사랑하려 했으나
단 한 번도 현존과 영면의 경계를 분명히 해본 적이 없었노라
그래도 괜찮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희망이라고 하는 맑은 날을 조심하면 된다
그 밑에서 다 잊은 듯 빨빨거린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똥물에다 와사바리를 털어주마
잔치는 끝났다, 이제 죽자, 죽는 게 낫다, 죽어야겠다, 태풍의 눈이 되자
그러자 어디 먼 데서 푸른 새들이 치솟는다
생각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상심하지 말아라 인간에게는 원래 아무것도 없단다
어제를 하나 더 죽이고 내일을 두 개 더 사는 것뿐이란다
저 새들이 사라지면 내 혀는 잘릴 것이다
그러나 뭐 상관없다, 언제는 그런 게 있기나 했던가
귀 잘린 인간들이 예쁘장하게 돌아다닌다
언제나 너무나 많은 바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
이곳은 얼마나 살만하더냐?
속으로 가만히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