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 「어제의 일들」, 『품위 있는 삶』. 파주: 창비.
좋은 단편은 인생의 결정적인 어느 순간을 다룬다. 물론, 그 순간은 그 이전의 일들이 쌓여서 변곡점을 지났을 때 다가온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얘기하면 단편 소설의 미학적 성패는 독자들이 그 결정적인 순간에 진실이 스며들어 있다고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살 시도로 아파트 5층에서 투신한 상현은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보행이 온전치 않은 장애인이 된다. 지금은 어머니라고 부르는 간병인이 운영하는 주차장을 지키는 상현은 그림을 그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현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두 명 있으니 그것은 중학교 동창이라며 찾아오는 율희와 이미 주차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채 쓰레기 투척장이 되어가는 주차장 영업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경찰들이다.
상현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다. 사고 이후 기억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손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의 일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고 이전의 일들은 미필적 고의로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매일 같이 찾아와 선물을 건네는 율희가 상현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직접적으로는 공고히 구축되어 있는 자신의 일상에 율희가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율희로 인해 상현은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율희가 매일 같이 상현을 찾아오는 통에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상현의 그림을 발굴하여 출판해준 상혁과 의진 부부가 찾아온다.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다는 팬블로그에 누군가 악의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는 것. 그 댓글의 내용은 율희가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그린 그림을 아이들에게 판매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것이 율희라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한때 상현과 율희와 어울렸다는 친구들이 찾아와 미술 선생님과 상현과의 사이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던 것은 율희이며, 자신들은 율희의 말에 속아 거짓 증언을 했는데 그로 인해 선생님의 삶이 망가졌다고 말한다. 망가진 상현의 삶에 대해서도 그들은 사과한다. 자신이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현은 도무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고,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이 그걸 이해할 리 없으므로 그들에게 알았다고 답한다. 율희는 망가져 있는 상현의 삶을 보며 즐기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친구들은 율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덜어 보고자 한다.
미술 선생님에게 예쁨 받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상현은 악의적인 소문이 돌자 자신을 외면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스킨십이 도를 넘어서자 자신을 내쳐버린 미술 선생님 때문에 괴로워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보다 상현을 더 견디게 힘들게 만든 것은 선생님의 외면이었다. 어느날 상현 충동적으로 투신하고 이로 인해 가족들에게도 의절 당한다.
전술했던 것처럼 사고 이후에도 상현은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하지만 율희를 비롯한 중학교 다른 친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상현의 삶을 가만두지 않는다. 잘 살아가던 상현은 그렇게 ‘어제의 일들’을 다시 복기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이 복잡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어떤 일이든 지나간다. 소설은 그 지나간 일을 다룬다. 지나가 버려서 다행지만 그 일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자리는 그 지나간 날들의 진실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따져 묻는 일이다. 「어제의 일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