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조직 연구는 인간의 정서나 감정을 합리적 조직 통제의 방해물로 여겼다. 그러나 생산성을 추구하는 데도 인간의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긍정심리학, 넛지 이론 등의 개념이 확산하면서 인간의 감정 또한 조직 통제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하워드 웨이스와 러셀 크로판자노 교수가 제시한 정서적 사건반응이론은 근무환경에 따라 조직구성원의 직무만족과 직무성과가 달라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직무특성, 직무요구조건, 감정노동요구 등과 같은 근무환경은 매일매일의 업무와 여러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조직 구성원은 업무상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소하게 누적돼 온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조직 구성원은 ‘번아웃’을 겪게 된다.
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직장인 중 64.1%가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번아웃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번아웃으로 인해 연간 3,220억 달러(420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세계경제포럼의 발표를 보면,번아웃은 실무 경제 차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러한 번아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장 구성원의 정서 관리를 위한 인사 제도 및 조직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S 보험사 재무설계 팀에서 잠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재무설계부서에는 우리 팀을 포함하여 총 4개 팀이 있었는데, 팀마다 분위기와 실적에 차이가 있었다. 매일 아침 회의 시간에는 주로 그날의 업무계획과 실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험회사여서 그런지 회의 때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회의 분위기도 팀별로 천차만별이었다. 팀의 분위기와 실적을 결정지었던 요인은 팀장의 정서 관리 리더십이었다.
우리 팀은 긍정적인 팀장님 덕분에 항상 활기찼다. 우리 팀의 아침 회의는 하루의 시작을 여는 워밍업 시간이었다. 팀장님은 항상 긍정적인 평가를 먼저 한 후, 보완해야 할 점을 알려 주셨다. 그날의 기분과 감정을 배제한 채, 사실에 기반하여 합리적인 피드백을 해 주셨고 팀원과 함께 조직 차원의 해결 방안을 논의하셨다. 사실 영업실적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팀장님은 해결책을 팀원들과 함께 찾는 것을 선호하셨기 때문에 우리 팀은 개인주의가 덜했고 의견교류가 자유로운 편이었다.
반면, 옆 팀에서 근무하던 나의 동기는 아침 회의가 마치 지옥 같다고 말했다. 옆 팀장님은 회의가 시작하는 순간 “너는 왜”라는 지적으로 시작하여 “~하세요”라는 명령으로 끝이 난다고 했다. 옆 팀은 마치 엘리트들만 모인 듯 체계적인 분위기가 있었지만 경직돼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실적은 우리 팀이 더 높았고 팀원들의 퇴사율 역시 더 낮았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정전이를 느낀다. 가정 내에서도 부모님의 감정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감정전염은 흔한 일이다. 조직에서도 감정전염이 일어나는데 대부분은 리더로부터 시작된다. 긍정적인 리더는 조직 내 활기찬 분위기를, 부정적인 리더는 경직된 분위기를 만든다. 리더가 처음으로 활성화한 정서가 구성원들 간에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리더의 정서 관리 역량이 조직 내 긍정적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조직원들의 정서 관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첫째, 구성원의 마음 상태를 알아야 한다. 미국 유비쿼티 은퇴 저축은행의 직원들은 매일 퇴근할 때마다 오늘 하루의 자신들의 감정을 기록한다. 해당 기업은 직원들로부터 수집한 기분 데이터를 가지고 동기부여 요소를 파악한다. 유비쿼티 외에도 일부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얼마나 즐겁게 일하는지 기록하거나 직원들의 기분을 시간 단위로 추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업에서 조직원들의 마음 상태와 생산성 향상을 연결 짓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복리후생 제도를 통해 정서 관리를 지원해야 한다. 최근 국내 기업에서도 임직원들의 심리상담 제도를 확충하는 추세다. 2021년, LG화학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24시간 모바일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또한 사내에 전문심리상담사가 상주해 있어, 필요한 직원은 대면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 네이버에서도 2022년부터 사내 심리상담센터를 오픈해 무료로 임직원들에게 개별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인 도움 외에도,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세이즈포스닷컴처럼 각 층마다 명상실을 만들어 직원들이 스스로 멘탈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셋째,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구성원 간 정서적 소통을 장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S 보험사에서 긍정적 정서 관리 역량을 갖춘 팀장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식을 했다. 저녁 회식을 업무의 연장으로 여기는 시대적 정서를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그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도심 외곽으로 잠시 드라이브를 나갔다 오거나 볼링장에서 볼링 시합을 하며 팀 분위기에 활력을 더했다. 업무 내 시간에, 업무 외 공간에서 팀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절로 동료애가 생겼다.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직무 성과에 대한 문제를 더 자유롭게 논의하고 피드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리더의 개방적인 태도와 긍정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조직에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지 결정하고, 해당 조직 문화에 적합한 정서를 구성원 간에 공유하는 과정에서 리더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조직 구성원의 정서를 관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조직 생산성을 높여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