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뮤즈
혼자살이 97일째
식물을 맞이했다.
감자를 심었다.
내가 흙을 사게 만든 첫 식물이야.
나는 곰손도 아까운 똥손이다.
손재주는 없으나
호기심은 많고, 행동력은 대단하여
꽂히면 일단 한다.
딸로서 엄마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싶어
도저언~ 한 날,
내 모습을 지켜보고 미역국을 드신 엄마는
-고맙다, 다음엔 안 해도 된다.
라고 완곡히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이 일은 부엌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하나이며,
나는 부엌에만 들어가면 파괴의 신이 되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내가 부엌에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회사 생활 중 신생아 모자 뜨기에 도저언~ 한 적도 있다.
몇 개 코가 빠져 구멍이 났는데,
우리 부서엔 뜨개질의 신이 계셨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건 힘들겠다고 했다.
다 뜬 신생아 모자를 봉사단체에 보내면
허술한 부분은 보완하여 준다고 하는데
내껀 힘들겠다 하여 보내지 못한 적이 있다.
식물과의 슬픈 인연은 길다.
누구나 한 번쯤 페트병에 양파 키우기는 해보지 않는가?
내 양파는 싹이 안 나더라고.
허브도 자꾸 말라가고.
한동안 내 인생에 식물은 없었는데,
위에 언급한 뜨개질의 신께서 다육이를 나눔 해주신 적이 있다.
각박한 사회생활에 자그마한 초록이를 잘 키워보자 싶어 데려왔는데,
영양제도 꽂아놨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나도 내 실력을 알면 그만둬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집에 파릇한 식물을 두고 싶은 마음은 커져갔다.
손재주 없는 나를 잘 아는 가족들은
식물 키우기를 말렸기 때문에
-언젠가 온 정성을 다해 키우리라
하고 버킷리스트로 만들어뒀던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시행하게 됐다.
혼자 살며 부지런히 밥반찬을 해 먹어도
재료가 방치되는 건 어쩔 수 없었고,
냉장고 한켠에 있던 감자에 싹이 난 것이다.
-너로 정했다
싹이 잘 크도록 감자는 고이 모셔놓고
자취생들의 천국인 다이소에서 가장 깊은 화분을 샀다.
남은 건, 흙.
이전에 시도했던 다육이는
우리 동네에 널려있던 흙으로 심어서 잘 못 컸나 싶은 마음도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의 6평 남짓한 내 공간에 없는 게 흙이라
인터넷 검색으로 상토 배사토 하는 것들을 샀다.
흙이 배송될 동안
싹이 난 감자를 반으로 잘라 상하지 않게 잘 말려두었고
드디어 오늘,
신경 써서 고른 화분에
배사토와 상토를 붓고
싹이 난 감자를 묻고
물도 조심스레 주고는
내 공간에서
감자를 키우기에 가장 적절하다 생각되는 공간에
화분을 두었다.
홀로 지내는 서울살이에 동거 감자가 생겼다.
누군가는 애완견, 애완묘에게 느낄 감정을
나는 감자에게 느끼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성장일기까지 쓰게 된 걸 보면
어쩜 그 이상일지도.
그래서 불러본다.
오 나의 뮤즈, 감자여
epilogue.
이렇게까지 감자 키우기를 애지중지하는 것은
항상 실패했던 일을 한 번쯤은 제대로 해내고 싶은
나의 오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감자의 성장일기라 불릴 이 글은
실은 나의 도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