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생각
처가인 광저우에 다녀온 이후로 그만 감기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이미 서늘해진 서울의 시월 날씨와 다르게 그곳은 한낮 기온이 36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매일 밤 에어콘을 틀었는데 찬 바람이 나와서 떨어지는 방향이 침대 머리쪽이었다. 며칠 못가서 딸이 이미 앓고 있던 감기가 그대로 옮았음을 알았다.
일본 키타큐슈에서 4년 여를 살면서 기억에 남도록 아파 본 적이 없다. 8시 반 출근에 5시 반 칼퇴근. 좋아하는 테니스를 일주일에 몇 번이고 즐길 수 있었고 잠도 충분히 잤다. 일 년을 가도 회식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여서 잘 못하는 술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에 비하면 '이 까짓 거!' 하고 여유를 부리며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마음이 편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몸이 건강해진 탓인지 감기도 가끔 걸리는 듯하다가 금세 나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몸이 나른하며 식은땀도 좀 난다. 아파서 힘든 정도는 아닌데 몸이 추욱 쳐진다. 그나마 업무 시간을 지켜가며 일하고 있지 않아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으니 괜찮다. 그냥 잘 때 기침만 좀 멎었으면 좀 더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건강에 대해 좀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나와의 거리가 가까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해쳐 힘들어 하고 있다. 나와 많은 부분 얽혀 있고 내가 감정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부분이 작지 않기에 관계가 먼 타인의 아픔을 대할 때와는 퍽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부모님댁에 잠시 얹혀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식사를 하시고 소소한 집안일을 마치신 후 책을 읽으시거나 텔리비전을 보시곤 한다. 홀로 텔레비전을 보실 때는 가정을 떠나 산에서 홀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는 걸 알았다.
가끔 어머니 옆에 앉아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본다. 산에 홀로 올라와 사는 이들의 사정이야 각양각색이다. 사업이 망해서, 사람이 싫어져서, 아등바등대는 세상이 싫어서, 건강이 악화되어, 그냥 산이 좋아서... 스토리는 이런 산사람들의 사연도 다루지만 그보다 오히려 산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산에다 어떤 집을 지어 놓고 사는지, 산에서 무얼 해 먹고 사는지, 추운 겨울은 어떻게 나는지, 매일 어디서 어떻게 산을 타며 산과 함께 호흡하며 사는지...
며칠 전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내가 어떤 치료가 어려운 병에 걸린 걸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길을 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치료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의사나 가족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계속 받도록 권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존의 생활 패턴을 포기하고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입원이나 통원 치료를 한다. 아마 나라도 막상 그런 판정을 들으면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정신적으로 깊은 혼란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치료에 매달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지금 비교적 정신이 온전하고 평화로운 이 시간에 생각할 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매우 모호한 말이지만, 내 상태가 치명적이고 확률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일단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나마 몸이 덜 아플 때 가지고 있는 자산을 정리해 떠나고 싶다. 혼자서 갈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해 주길 부탁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쓰면서 매우 조심스럽다. 이런 가정과 내 생각이 몸소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 및 지인들에게 가치 있거나 사려 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자의 치기이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가정하며 글을 쓰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의 결과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아프지 않은 편이 당연히 좋겠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다치기도 하고 아플 때가 찾아 온다. 언젠가 가까운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 당신은 평소 너무 건강해서 몸이 아픈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부족해요. "
사람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바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나마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평소 건강해서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했던, 몸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다가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아주 조금 더 생각하며 삶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음에 고맙다.
아픈 사람들에게 구원이 찾아오기를, 빛과 같은 희망이 그들을 감싸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또 바란다. 다시 샘물처럼 솟는 삶의 기쁨이 그들을 찾아오길 신께 간절히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