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 각색의 집이 모여있는 동네가 좋다
집, 건축은 그곳에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그려 만든 집에서 사는 사람들, 위대한 건축가가 지은 건축물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냥갑 같이 생긴 아파트 또는 빌라 한 칸을, 주택 한 켠을 차지하고 살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라이프스타일, 삶의 철학을 반영시킨 집을 구했다기 보다는 아이의 학군, 회사 또는 마트와의 거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예산 돈 등 외생변수를 더욱 많이 고려해서 집을 골랐을것이다.
난 어릴적부터 '응답하라 1988' 쌍문동 같은 작은 주택이 모여있는 동네에서 자라왔다. 88년에 태어났으니 드라마 주인공보다는 훨씬 어렸을때이지만 90년대의 우리 동네는 영상 속 쌍문동과 유사했다. 애들은 학교 다녀와서 어디서, 몇시에 만나자는 약속도 없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비슷한 시간에 모여 동네 한 켠에서 모여 술래잡기를 했다. 여름엔 가장 큰 집 앞 넓은 공터에서 대야에 물을 받아두고 물장난을 치며 더위를 식혔다.
지금 사는 동네는 단독주택과 빌라가 혼합되어있는 동네에 사는데, 난 이 동네가 참 좋다. 각기 다른 형태의 집들이 모여있어 그 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는데 즐겁기 때문이다. 가끔 동네를 다니며 집들을 구경하며 상상을 해본다. 이 주택의 2층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겠구나, 이 빌라의 1층 사는 사람들은 또 저렇게 살겠구나 하며 나름대로 상상을 하며 돌아다녔다. 골목에서 조금만 나오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고, 보습학원이 있고, 작은 마트가 있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장을 보고, 아이들 학원을 보내며, 출퇴근을 하기 위해 지나칠것이다.
또, 그 집에 사는 나를 상상해본다. 이왕이면 대문이 멋지고 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을 고른다. 마당에는 어릴적 우리집에 있던 앵두나무를 키우고싶다. 앵두가 열리면 우리 아이들이 오며가며 앵두를 따서 바지에 슥슥 닦아서 맛볼 수 있게 말이다. 현관으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고, 대문 근처에는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차양막을 설치했으면 좋겠다. 이런 망상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