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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Sep 05. 2021

연어 초밥

가을


연어 초밥




재료

  생연어  200g  쌀밥 2공기

  식초   4Ts  설탕 4Ts

  소금  1Ts  다시마 약간

  와사비 약간  간장 2Ts



재료 밑준비

  ① 쌀밥은 고슬고슬하게 짓는다

  ② 연어는 초밥 위에 얹어먹고 싶은 크기로 썰어둔다

  ③ 간장은 물과 1:1로 섞어 준비한다.



초대리

  작은 냄비에 다시마를 넣고, 식초와 설탕, 소금을 넣는다. 냄비에 약불을 올려 재료를 가열한다.

  이때 가열의 목적은 재료를 끓이려는 것이 아니라, 가루를 빠르게 녹이기 위함이므로 잘 저어주다가 소금과 설탕이 반정도 녹았을 때 불을 꺼 준다.

  초대리를 밀폐용기에 담아 식초가 날아가지 않도록 하여 식혀준다. 하루 가량 냉장고에 넣어서 숙성시킨다면 다시마의 맛 성분이 우러나오며 더욱 깊은 맛이 난다.          


밥 간하기

  넓은 볼에 밥을 넣고, 조심스럽게 뒤섞으며 올라오는 김을 모두 날려보낸다. 밥의 수분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함이다. 더이상 밥에서 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충분히 식을 수 있도록 잠시 방치하여 둔다.

  밥이 충분히 식었다면 초대리를 조금씩 끼얹으며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비벼 준다.

  밥이 너무 질척해지지 않도록 양을 조절해야 한다. 밥을 조금 먹어봤을 때 싱겁더라도 밥이 조금 질척하다면 초대리 투입을 중단하는 편이 좋다.      


    


밥 쥐기

  초밥을 만드는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공정이다. 일본 장인들도 익숙하게 밥을 쥘 수 있게 되기까지 수 년 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던가. 낯선 존재와 익숙해지기란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너와의 첫 만남이 그리하였다. 어느날, 외로운 고시생에게 친구 녀석이 새로운 인연을 소개해 주겠다며 갑작스레 너의 연락처를 내게 전해줬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는 동안, 더욱 갑작스럽게도 너에게 연락이 왔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그 상황이 썩 기꺼웠다. 당시 나의 일상에서 의사소통을 할 기회는 고시학원 강사와 주고받는 인삿말과 편의점 알바생과 나누는 대화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너라는 사람이 특별했기에 즐거웠다기 보다는, 그저 말동무가 생겼다는 사실이 내 일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너도 느꼈겠지만 우리가 딱히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다. 너는 내 생활을 공감할 수 없었고, 나는 네가 좋아하는 TV 프로를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꽤나 상대방에게 맞춰주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러다 네가 서울에 올라오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었지. 서울은 태어나서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며 너는 온갖 관광지들의 이름을 나열했고, 나는 식은땀을 흘렸었다.

  내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기는 했지만 고시원과 고시학원만 오가는 성실한 고시생이었기에 남산타워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북촌 한옥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거든. 그래도 지하철 환승은 할 줄 알았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만난 너는 생각보다 왜소했다. 그리고 잠시 대화를 나눠 보고 깨달았다. 네가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것을. 곤란했다. 항상 끌려다니던 연애만을 하던 내게 리드해야 하는 관계는 매우 낯설었으니 말이다.

  초밥을 처음 쥘 때에는 크기가 감이 잘 오지 않으므로 필요 이상으로 큰 주먹밥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우선 반 숟갈 분량 정도의 밥을 덜어 조심스레 뭉쳐 보자. 밥알이 찌그러질 정도로 세게 누르지만 않으면 대충 먹을만은 한 초밥이 만들어진다.

  일본의 장인들은 네다섯 번의 손짓 만으로 와사비와 회까지 얹어진 초밥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고 하더라. 손의 열기로 인해 밥의 맛이 변질된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건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밥을 하나씩 뭉쳐내도록 하자. 작은 밥 덩어리들을 여러 개 만들어두고, 마지막에 와사비와 회를 얹어서 초밥을 완성하면 충분하다.

  그래, 우리 사이에도 어쩌면 인내심이라는 윤활유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몰랐고, 너는 처음 얼굴을 마주한 사내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만나 명동으로 먼저 향했다. 지하철에서 움추린 너는 주변 사람들을 몹시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느껴져 조금 안쓰러웠다.

  명동에서 우리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들, 깃발을 들고 우르르 몰려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들, 그리고 피로에 절어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까지.

  우리는 그들 사이에 어울리지 못하고 한동안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도 명동은 처음 와 보는 시골 사람일 뿐이었기에.

  잠시 돌아다닌 뒤에 우리는 그냥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인파를 헤집고 숨어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기에는 기가 빠진 상태였으니.

  일식 프랜차이즈 가게에 들어가 우리는 초밥 세트를 주문했다. 항상 눈을 피하던 너와 처음으로 마주앉았다. 카톡과 전화로는 나눌 수 없었던 교감을 나누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너는 고개를 숙인 채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까봐 몹시도 걱정하던 너의 불안한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손이 참 예쁘네?"

  혼자서 아무말이나 떠들다가 적당히 무난한 칭찬을 건네었다. 너는 몹시 놀라 당황하더니 소매를 끌어당겨 손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내가 얼마나 싫으면 손을 칭찬했다고 손을 가려버릴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뒤늦게 네가 귀와 목까지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오해를 풀었다.

  그저 부끄러움이 많은 것인지, 자존감이 몹시도 낮은 것인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여자였다, 너는.



초밥 조립하기

  만들어진 밥 뭉치의 중앙에 와사비를 조금 묻힌다. 생각보다 훨씬 더 조금 묻히는 것을 추천한다. 초밥이 싱겁다면 와사비를 따로 묻혀서 먹을 수 있지만, 이미 지나치게 간이 센 초밥을 해체하여 다시 와사비를 걷어내는 과정은 만든 사람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넘치면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는 애매하고도 어려운 일. 너를 대하는 것도 그런 일이었다. 소개팅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여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너무 미적지근하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조금만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너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츠리고 경계 태세가 되어버렸으니.

  초밥 조립의 나머지 공정은 다행히도 간단하다. 밥 위에 회를 살며시 얹기만 하면 완성이다. 취향에 따라 물에 탄 간장을 찍어먹자. 취향과 결이 맞는 양념을 곁들이는 것이 최고다. 사람도 그렇고.    


 


가을 초밥

  우리는 그날 참 많은 것을 했다. 케이블카도 타고, 남산도 다녀오고, 꼭대기의 전망대에도 다녀왔다. 그럼에도 별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내 반경 1미터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너도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또 아닌 것도 같고. 참 생각만 많아지던 하루였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대학로에서 연극을 두 편이나 봤다. 타임머신을 탄 것이나 다름없다. 대화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 네 시간을 허공으로 흘려보낸 것이니.

  저녁 차시간이 다가와 너를 배웅할때가 되어서야 너는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제서야 너는 어색함을 덜어내고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하루 종일 관객 없는 공연을 뛰고 온 기분이었거든.

  그날 이후 나는 네게 먼저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너도 딱히 내 연락을 기다렸던 것 같지는 않고. 우리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이라.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이다. 매일 보던 장소와 상황 속에서 생각을 비우고 익숙함을 연기하면 되는 것이니까.     



치즈케익 스튜디오의 첫 번째 프로젝트북이 곧 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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