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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Sep 05. 2021

돼지 목살

겨울


돼지 목살

재료

  돼지 목살  많을수록 좋아



재료 밑준비

  ① 두꺼운 목살을 구매한다

  ② 냉장고에서 꺼낸 뒤 상온에 잠시 방치해 두면 좋다



불 피우기

  두꺼운 생고기를 구울 때에는 숯불도 좋고 가스불도 좋다. 숯불이 건네주는 풍미 자체가 몹시도 독보적인지라 일반적으로 숯불에 구운 고기가 더욱 맛있다는 것이 정론이나, 회식자리와 같이 고기를 정신없이 구으면서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스불이 훨씬 더 유용할 수도 있다.     



고기 굽기

  숯불에 직화로 고기를 굽는 경우에는 불이 들어온 직후에 고기를 올리면 되고, 가스불에서 팬에 고기를 굽는 경우에는 그릴이 가열되기를 기다린다. 그릴이 충분히 달궈졌다면 고기를 얹는다.

  고기를 너무 자주 뒤집으면 육즙이 빠져서 맛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아무리 자주 뒤집어도 별 차이가 없다는 논문도 있다. 그러니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원할 때마다 뒤집으며 고기의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자.  

    


돼지 목살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려면 다들 식사량이 장난이 아닌지라 무한리필 식당을 방문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대충 70%가량 식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 날도 여느때와 같이 엉터리 생고기에서 두꺼운 목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모두가 삼겹살을 탐할때 나는 목살을 외치는 스타일인지라. 불판 가운데에 있는 된장찌개 뚝배기에 김치와 고기를 잔뜩 넣어 김치찌개도 만들어 먹었다.

  한창 배가 불러오고 기분이 좋아지던 중에 너에게 전화가 왔다.     



겨울 목살

  가게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너는 몹시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건성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고기를 먹으러 들어가면 될 터였다.

  너는 모든 불쾌한 경험을 나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으려 했다.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녹여낼 수 있는 역량이 아예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너였다.

  그리고 너에게는 기묘한 재주가 있었다.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탓을 했다. 조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면 신기하게도 너의 분노의 화살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도 그에 수긍하고 너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네가 직장에서 싸운 것도 내 탓이요, 손님에게 욕을 먹은 것도 나의 탓이었다. 그 현란하고도 절묘한 가스라이팅 솜씨에 나도 모르게 나를 자책하며 진심으로 네게 미안함을 느끼곤 했으니. 내게는 참으로 해로운 관계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나는 전화로 너의 투정을 받고 있었다. 내가 내뱉은 입김이 바람을 타고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운 채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가게 안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을 목살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얼른 끊고서 자리에 돌아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기분이 몹시 좋았으니까.

  그리고 너 또한 나의 심경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네가 기분이 나빠진 원인은 나의 성의없는 태도 때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사과를 해야 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길가를 메운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는 여러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너는 매번 쉽게 이별을 고했다. 처음에는 내가 매달렸지만 나중에는 네가 매달렸다. 그리고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분명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가게에서 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때에도 회사 동료들과 고기를 먹고 있었고, 나는 중간에 전화를 받으러 나갔었다.

  멍하니 찻길을 보며 너의 투정을 한 시간 가량 받아줬다.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가게 밖으로 나와 나를 찾았다. 내가 길바닥에 뻗어 있을까봐 걱정했나보다.

  어느새 친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제 차를 타고 헤어질 시간이다. 차를 가진 멤버가 나 뿐이었으므로 모두가 내 차 앞에 서서 우리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네게 조금만 뒤에 다시 통화하자고 이야기했고, 너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오늘도 친구들과 엉터리 생고기에서 고기를 먹다가 너의 전화를 받았네.

  조금 이성이 돌아왔다. 모든 문제를 나의 잘못으로 돌리는 헛소리는 그만 듣고 고기나 먹으러 가고 싶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고맙게도 너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 지난번보다 통화가 짧아서 다행이었다. 아직 식사자리는 끝나지 않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먹을 목살이 남아 있을 것이라.

  한때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고작 무한리필 고깃집의 목살 몇 점보다 가치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몹시도 씁쓸했다. 내 자신이 한심해서 웃음이 계속 나왔다. 분명 맛있는 목살 덕분이었을 것이다. 너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 가게에서 먹는 목살을 몹시도 좋아한다. 모종의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아 더더욱.

  문득 네가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네가 만나고 있을 사람도 궁금하고. 너는 여전히 네가 겪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너의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비롯했다고 소리치며 지내고 있을까? 아마 그럴 것 같기는 하다.



치즈케익 스튜디오의 첫 번째 프로젝트북이 곧 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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