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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Mar 07. 2019

마사이족의 친구, 정규민 디자이너를 만나다.

반병과 사람들 (6)

  반병과 사람들은 필자가 주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어느 모임에 가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의 개성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 편입니다. 호기심이 많기도 하고, 관찰력이 좋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고 특별해 보이지 뭡니까. 그래서 어딜 가면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역시 이 중에 정상인은 나밖에 없어."


  그리고 놀랍게도 어느 모임을 가도 무수한 욕설과 신변에 대한 위협이 답변으로 돌아옵니다. 힝.


  이 시리즈도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제게는 참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들인데, 이걸 한번 재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그 맛집을 주변에 소문내고 싶은 욕구와 비슷 하달 까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을 나 혼자서만 알고 있자니 너무 아까워!"


  

정규민 (27)

  오늘의 주인공은 아티스트 정규민 님입니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이자 술친구입니다. 필자와 예술적인 철학이 궁합이 잘 맞아 여러 건의 협업을 해 왔습니다. 아울러 앞으로도 예술활동을 함께 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아 함께 뭉쳤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터뷰 맨 마지막에 있습니다.


  정규민 님의 예술적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겠습니다!



  "라화쿵부는 너무 현지화가 많이 된 맛이지 않아? 좀 더 중국중국한 맛을 보고 싶은데."

  "중국 맛이라. 조금 돌아다녀 볼까?"


  불금이다. 건대입구역이다. 무슨 이벤트를 하는지 길 건너 클럽에는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젊은이들이 잔뜩 모여드는 건대입구 먹자골목. 그 반대편 차이나타운 입구에서 우리는 만났다.


  언젠가 상상텃밭의 김수빈 대표가 팀원들에게 훠궈와 마라탕을 영업했다. 나는 그 알싸한 매력에 금세 푹 빠져버렸고, 김 대표가 그러하였듯 주변인들에게 마라 맛을 전파하고 있다. 정규민 디자이너 또한 이국적인 맛을 즐기는 취향이다 보니 바로 마라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쪽에서의 고인물이 되어버렸고 현지화된 식당을 멀리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저 간판 좀 봐!"

 

디자이너 뒷목 잡게 만드는 디자인의 간판

  "와 기절할 것 같다. 여백도 없고 색 조합도 엄청 공격적이네. 여기다, 틀림없다!"

  "이 정도 UI면 진짜 본토 중국인 요리사가 틀림없다. 가자!"


  우리가 가 본 적 없는 중국 요릿집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는 바로 간판의 디자인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간판의 심미성이 떨어질수록 요리가 맛있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마라샹궈는 인류가 낳은 최고의 자산이야. 지구가 멸망해서 딱 한 가지 지식만을 보존할 수 있다면 마라샹궈 레시피를 보존해야 돼."

  "어휴. 건배나 하자."


정규민 님

  "컵술을 시키다니, 좀 아는구나?"

  "그럼. 이거 진짜 대단하다? 매운 걸 먹고 이걸 살짝 먹으면 매운 게 완전히 사라져."


  안주가 좋고 사람이 좋으니 술이 빠르게 사라진다. 술이 줄어드는 속도와 비례하여 좋은 이야깃거리들이 오간다. 글쟁이로서 이 대화를 놓치기가 너무 아까웠다. 녹음기 앱을 켜서 반 강제로 내 스마트폰을 정규민 님에게 쥐어 줬다.


  "이거 뭐야?"


  Q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2. 어 이게 무엇인가?


  Q2. 인터뷰다.

  A2. 이렇게 갑자기? 역시 넌 제정신이 아니다.


  Q3. 고맙다.

  A3. 세종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재학 중인 정규민이다. 안동의 케냐맨으로 불리고 있다. 근데 좀 유쾌해 보이고 싶은데 너무 정상인처럼 대답해도 되나?


  Q4. 양심이란 게 있는가?

  A4. .....


  Q5. 자, 질문 들어간다. 너에게 지금 무한한 시간과 자원이 주어진다. 작품을 하나 만들어야 되는데, 그걸 완성하면 그다음 날 무조건 죽어.

  A5. 아니 처음부터 이런 질문인가? 그다음 날 무조건 죽어?

 

  Q6. 그렇다. 무조건 죽어야 된다. 네가 죽은 다음 세상에 발표된다.

  A6. 유, 유작이야?


  Q7. 그렇다. 무조건 유작이다.

  A7. 와 씨.....


  Q8. 예술가들은 이 정도로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야 본심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

  A8. 예술을 아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Q9. (일어나며) 알겠다. 예술 앞에 타협이란 없다. 잘 있어라.

  A9. 마라샹궈는 안 먹어?


마라샹궈. 수분이 적은 재료 위주로 고르는 게 필자의 노하우다.

  Q10. (다시 자리에 앉는다.) 자 우리 협업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우물우물.

  A10. 어휴 넌 진짜.


  Q11. 나랑 처음으로 만난 게, 그 법대로 합시다 표지 작업하면서.

  A11. 아. 이현도(법대로 합시다 공저자)한테 팔려갔다.


  Q12. 그때 공저자 이현도가 자기가 아는 디자인 노예가 있으니까 잡아오겠다면서 사라지더니, 갑자기 카톡방에 너를 데려왔다. 그때 소감이 어땠나?

  A12. 그때? 지금도 그렇지만 현도가 한결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고. 얘가 갑자기 나를 납치해서 어디 단톡 방에 딱 떨어뜨려놨는데. 이게 뭐지?


  Q13. (폭소)

  A13. 근데 당시 반병현이라는 이름은 유명했단 말이야.


  Q14. 엥? 내가?

  A14. 그때 경안고에 반 모씨가 되게 유명했다. 내가 들은 썰이 뭐가 있냐면 (후략)


  Q15. 그건 인터뷰에 일절 안 내보낼 거다.

  A15. 와 직권남용이다. 암튼 얘가 걘가? 흔하지 않은 이름이니까. 그리고 현도 친구면 일단 이상... 흠흠. 정상은 없으니까. 현도 친구 치고 멀쩡한 애 없어.


  Q16. 맞는 말이다.

  A16. 얘는 어떤 식으로 이상한 애일까? 아니나 다를까 정상은 아니구나.



법대로 합시다 (3D 렌더링). 표지 디자인 정규민.

  Q17. 그렇지. 내가 정상은 아니지. 작업이 여하튼 되게 이쁘게 타이포그래피가 나왔잖아? 그거 평소에 하던 작업 스타일이랑 좀 다르지 않았나?

  A17. 그렇지. 이게 시중에 나오는 폰트로는 낼 수 없는 느낌이기도 하고. 종이에 붓글씨를 써서 스캔을 떠서 작업을 했었다. 나도 그런 스타일의 작업은 처음이었어.


  Q18. 내가 쓴 두 번째 책에도 표지에 참가했었는데. 실전 민사소송법. 그때는 평소 스타일이 좀 많이 녹아나지 않았나. 그때 작업할 땐 기분이 어땠나?

  A18. 그때는... 원래 엄청나게 끔찍한 시안이 있었다. 그거보다는 이게 낫지 않겠냐 하고 시간 얼마 안 쓰고 휘리릭! 탁! 한 건데.


(좌) 엄청나게 끔찍했던 시안  (우) 정규민 작품

  Q19. 그 시안 원래 내가 만든 초안이었는데, 너랑 이효석이 갑자기 출판사 욕을 하더라고. 이런 디자인을 주냐고. 상도덕이 없다고. 그래서 출판사에서 준거인 척했어. 사실 내가 만든 거였다.

  A19. 넌 어디 가서 디자인은 하지 마라.

 

  Q20. 아무렴. 나는 글작가다.

  A20. 좋다. 글만 써라. 그림은 그리지 마라.


  Q21. 예전에 치즈케익 스튜디오(작곡 AI 스타트업)에 있을 때에도... 아, 치즈케익 스튜디오 팀에 갑자기 합류한 계기가 뭐였나?

  A21. 내가 이것저것 다 겪어 보면서 경험을 쌓는 걸 좋아한다. 내 경험은 곧 작품 활동에서 내 자산이 되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도 내가 이것저것 해 보려고 여기저기 둘러보던 때였는데 페북에 네가 올린 글이 있는 거야. "솔깃"이라고 두 글자 리플 달았는데 1초 만에 답글 달리더니 단톡방에 납치됐다.


  Q22. 나는 너랑 작업할 수 있는걸 영광으로 생각했었다. 이미 작품 세계에 반해 있었어서. 그 동물 대가리 4부작에 반했었다.

  A22. 대가리라고 하니까 갑자기 뭔가 모욕감이 든다.


네이버 D2SF 출입카드와 치즈케익 스튜디오 명함

  Q23. 그때 암튼 그렇게 같은 팀이 됐었지. 재밌는 일이 많지 않았나? 강남역 네이버 D2SF 안에 우리 사무실 입주해서 거기로 출퇴근하고. G 모 회사에서 우리 팀을 통째로 채용하려고 접근도 했었고. 그때 우리가 돈 때문에 외주를 많이 했었는데 어떤 게 기억에 가장 남는가?

  A23. 달빛막창이라고, 서강대학교 사람들이 하는 막창집이 있어. 거기 로고나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우리가 했었지. 명함이랑 메뉴판이랑 간판이랑.


달빛막창 전경 / 출처 : 네이버 검색

  Q24. 막창 얻어먹었나?

  A24. 그 집 막창 아주 맛있다더라. 나 말고 이효석(치즈케익 스튜디오 대표)이 가서 얻어먹었다. 아, 효석이는 국회 쪽 외주도 했는데. 휴가 나오면 물어봐라.


  Q25. 그래야겠다. 근데 군인을 인터뷰해도 합법인가?

  A25. 흠. 신분이 참.


달빛막창 로고 / 정규민 제공


  Q26. 외주 이야기 나온 김에 예술과 외주에 대해 이야기나 좀 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장르, 내가 신나서 만드는 작품은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사람들 반응도 좋다. 그런데 의무감에 쓴 글이나, 부탁을 받아서 기고한 글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재미도 없는 것 같다. 창작이란 게 원래 이런가?

  A26. 의무감이라는 게 섞여 들어가는 순간부터 내가 창작한다는 느낌보다는 끼워 맞추는 느낌이 커진다. 즐겁게 작업하다 보면 실수도 섞여 들어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중에 실력도 조금씩 올라가는데 이런 게 작품에 녹아들어 간다. 그런데 이게 점점 의무감이라는 게 섞이면 기교만 남게 되고, 갈수록 시간 안에 쳐내야겠다는 느낌이 들다 보니 점점 정성도 줄어드는 것 같고. 이런 상황까지 정이 떨어지면 안 하고 싶어 진다. 손이 안 간다.


  Q27. 어려운 문제다. 먹고살려면 그런 걸 잘 견뎌내야 될 텐데.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는 그런 거랑은 거리가 있고.

  A27. 끊임없이 새로운 걸 추구하게 되긴 하는데, 맨날 그러기는 힘들잖아.


  Q28. 아까 여기 오기 전에 해 줬던 명언이 기억에 남는다. "절벽이면 아직 시간 있다. 떨어지면서 만드는 거다."

  A28. 흔히들 절벽 끝까지 몰려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하잖아. 근데 절벽이면 아직 시간 있는 거다. 예술은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하는 거다. 그쯤 되면 급하니까 이렇게 막 던져보기도 하고.


  Q29. 그런 게 우연이나 무의식을 잘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런 걸 좀 녹여내려고 고민을 많이 하는데 결과가 영 마음에 안 든다.

  A29. 그래서 만약에 오전 10시 듀면 전날 밤까지 계속 작품을 붙들고 있다. 매번 아침 9시까지 작업하는 거다. 매번 해 뜨는 거 보면서 "하 오늘도 라이징썬 했다." 하면서 복잡한 심경 느끼고.


  Q30. 전에 나랑 콜라보했던 그것들도 그런 식으로 작업했던 것 아니냐.

  A30. 맞다. 데드라인의 마법이 있다.


콜라보 예시 (2017)


콜라보 예시 (2018)


  Q31. 데드라인이 영감의 원천이 맞다. 아 혹시 영감이라는 말을 믿는가?

  A31. 영감이라기보다는 아까(A21) 말한 거랑 비슷한데.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것들이, 내 몸에 내재되어 있던 것들이 조각조각 모여서 하나의 파츠가 이렇게 완성되는 거야. 그러다 보니 나한테 없는 건 안 나와. 그래서 많은 경험을 쌓으려는 것도 있고. 내가 이제까지 봤던 것들이나 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랑, 새로운 걸 봤을 때 떠오르는 거랑 갑자기 매치가 딱 됐을 때 떠오르는 거지.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영감이.


  Q32. 결국 쌓아 올렸던 경험들이 모여서 영감이 나오는 거다. 나와 견해가 일치한다. 그럼 그 경험이 사실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자산이고 무기고 재료인데, 혹시 남들보다 특별한 경험을 해 본 게 있는가?

  A32. 남들보다 특별한 경험이라. 음... 외국에서 살다가 왔다.


  Q33. 외국에서 살았다고? 미국인가? 예술의 본고장 프랑스?

  A33. 너 잘 알면서 되게 모르는 척 잘한다.


  Q34. 그래야 독자들이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다.

  A34. 그렇구나. 미국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니다. 아프리카다. 마사이족이 있는 케냐에서 살다가 왔다.


  Q35. 헤에에??? 안동 사람이 어떻게 아프리카까지 갔나? 왜 갔나?

  A35. 일단 안주랑 술이 다 떨어졌는데 2차 가서 이야기할까?


  Q36. 좋다. 당장 근처 맛집을 안내해 달라.

  A36. 따라오라.


2차는 이자까야에서 사케를 마시며

  Q37. 자, 얼른 아프리카 썰을 풀어봐라. 왜 거기까지 갔나.

  A37. 당시 입시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보람찬 일이지만 내 독자적인 예술활동을 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었다. 이 좁은 일상에 갇혀있는 게 불만이었다. 이 매너리즘을 부수는 것이 작품 활동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고, 이왕 벗어나는 거 대한민국 밖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경험을 쌓고 싶어서 아프리카로 갔다.


  Q38. 계기는 잘 알겠다. 그런데 체류비용이나 교통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A38. 해외파견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NGO가 있다. 여러 나라를 고를 수 있는데.  근데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세계일주를 하더라도 다른 데를 다 한 바퀴씩 돌고 나서 마지막에서야 아프리카를 간대. 이게 뭔가 그런 게 있나 봐. 난이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가? 일단 쉽고 낭만적인 데를 먼저 가고 끝판왕이 아프리카인 것 같아. 이왕이면 1년인데, 캄보디아나 유럽은 패키지로도 갈 수 있으니까 나는 아프리카를 골랐다. 이왕이면 센데 가자.


아프리카 부근에 손을 짚고 있다 / 본인 제공


  Q39. 아하. 그래서 아프리카를 골랐는데 그게 케냐였구나. 원래 그렇게 매운맛을 좋아하나?

  A39. 가끔씩 자극적인 맛을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


  Q40. 그게 몇 살 때라고?

  A40. 2016년이니까 24살 때다. 그리고 이게 또 해외 가서 막 구르고 와도 건강할 나이가 있잖아. 더 늦기 전에 가 보고 싶었다.


  Q41. 말라리아 걸려도 체력으로 버틸 나이.

  A41. 그렇지. 내가 그때 주사를 한쪽 팔에 다섯 개를 맞았어. 부위별로 여기 하나, 여기 하나. 병원 순회하면서. 다 다른 종류의 예방주사를 맞는 거야.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으면 옐로 피버 카드를 하나 준다. 간지 나는 거. 여권에 꽂혀있는 거 자랑하면 사람들 다 신기해한다. 레어템이다. 이게 없으면 입국이 안 된다.


  Q42. 케냐 공항에 딱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처음 느낀 감상이 어땠나?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는가?

  A42. 약간 그런 느낌이다. 그런 말이 있어. 공항에서 도심으로 오는 긴 도로가 있어. 고속도로는 아니고. 거기 좌우가 전부 초원이야 전부. 사바나 초원. 거기서 기린이 목 내미는 걸 보면 하는 일이 다 잘 풀린다는 이야기가 있어. 나는 거기서 기린을 봤다.


기린 / 정규민 님 제공

  Q43. 기린을 정말 눈으로 봤다고? 이거 합성 아닌가?

  A43. 그냥 창 밖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다. 얼룩말 뛰어다니고 가젤 뛰어다니고.

  

아니 무슨 얼룩말도 진짜였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 정규민 님 제공


  Q44. 우와... 진짜 신기하다.   

  A44. 집 문 열면 거기가 사바나 초원이다.


  Q45. 그때 본 것들이 기분이나 분위기, 생각에 전환이 많이 되었을 텐데. 그때 영감을 받아서 만든 작품이 있나?

  A45. 그때 했던 게, 일단 내 전공을 살려서 했던 일들 중에 하나가 거기 식수지원 사업의 일종으로 물탱크와 태양열 펌프를 설치해 주는 일이었거든. 물탱크가 2천 리터 규몬데, 이제 여기에 후원을 해 줬으니 단체 로고를 그려야 한다. 그런 걸 내가 주로 했다.


물탱크에 로고를 그리는 정규민 님

  Q46. 와 신기하다.

  A46. 건물 벽에도 그렸다.


학교 벽에 후원단체 로고를 그리는 정규민 님

  Q47. 와...

  A47. 주로 마사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학교 벽에다가도 그림 그리고. 그런데 이제 봉사가 끝나고 돌아갈 시기가 되니까 거기 지부장이 나보고 "미술 전공했는데, 그리고 싶은 거 그리고 가."라고 하더라. 그때는 이제 물탱크가 내 도화지가 된 거지. 그제야 비로소.


  Q48. 그 말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땠나?

  A48. 처음에는 일이니까 하던 건데. 로고도 정해져 있고. 단순노동이었는데 이제 갑작 설레기 시작하는 거지. 단순히 물을 저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제 여기는 내 캔버스니까.


바나나 나무를 관리 중인 정규민 화백


  Q49. 그 느낌 안다. 내 예술적 영역으로 무언가가 포함되는 순간이 되게 설레잖아.

  A49. 재질도 특별하고, 작업을 하는 지역도 특이하고. 케냐가 뜨거운 지역이니까 그에 맞는 재료 선정이나 표현기법까지 모두 여기에 맞춰서 들어가야 되는 거야. 기획의 규모가 컸다. 뭘 그릴까 고민하다가 사자를 그리기로 했다. 마사이 부족이 사자와 관련이 깊은 곳이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성인식 때 사자를 잡았대. 또 사자 하면 용기잖아. 내가 이렇게 아프리카까지 왔다. 내 첫 발을 용기 있게 내디뎠다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고.


꼬맹이들과 함께


  Q50. 주제는 그렇게 정했구나.

  A50. 그리고 마사이 쪽은 색감이 되게 화려하다. 파랗고 노랗고 초록색. 형형색색의 원색들을 선호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딱 마사이 색이라고 할 수 있는 난색. 이쪽으로 해서 정열적인 색감으로 표현해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진행했다.

  붓 터치로 거친 털 느낌을 내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도구를 더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있는 재료로 고민했지. 그 속에서 기법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 봤어. 하면서 그 순간순간의 기분을 많이 담았고. 제일 좋았던 건. 학교 물탱크에서 그렸단 말이야. 그러니까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와서 "외국인이 그림 그리고 있다!" 하면서 와서 구경하고. 붓질 한 번만 해 보자고. 안 돼. 그건 내 거야. 딴 거는 해주겠는데.


  Q51. 작업 중인 작업물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대는 걸 용납할 수 없다!

  A51. 그니까. 이건 안돼. 이건 내 거야.


케냐에서 그린 작품


  Q52. 재밌었겠네. 되게 좋은 추억이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거 딱 보고 기분이 어땠어?

  A52. 내가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딱 해가 질 때쯤 이제 완성이 됐어. 그때 해가 뉘엿뉘엿 옆으로 떨어져서 딱 이쁠 때 있잖아. 그 빛이 정확하게 거기 물탱크에 내리꽂는 거야. 너무 이뻤어.


  

  Q53. 하루 만에 그렸다고?

  A53. 그렇지.


  Q54. 그게 더 대단하다.

  A54. 그것도 있고. 내가 그 학교에는 그림을 되게 많이 그렸어.


  Q55. 지금. 지구 반대편에 본인의 작품이. 아프리카 한 복판에 여기저기 남아 있는 거잖아.

  A55. 그렇지.

 

  Q56. 그거 생각하면 막 벅차오르지 않나?

  A56. NGO 쪽 한국인들이 거기 활동 갔다가 내 그림 보면 막 벅차오르고 그런데. 난 그런 거 전해 들으면 뿌듯하고 그러지.

  

그가 아프리카에 남기고 온 것은 그림뿐만이 아닐 것이다.

  Q57. 아무래도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겠지만, 남들이 내 작품 보고 만족하고 공감해 줄 때 가장 행복하잖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완성도 덜 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막 구경 와 가지고 교감이나 공감을 표현해 주고.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본다. 아주. 이런 걸 걸작이라고 부르지 않나.

  A57. 내가 한 것 중에 가장 뿌듯하지.


  Q58. 나중에 상상 텃밭 물탱크에도 그림 좀 그려달라.

  A58. 어 그건 좀...


  Q59. 맨 처음 예술을 결심한 게 언제인가?

  A59. 어... 그걸 꼭 듣고 싶나?


젊은 예술가의 그림자


  Q60. 이런 반응이 나오면 무조건 들어야 한다. 말해 봐라.

  A60. 어 그건... 내가 처음 포토샵을 만져본 계기가.. 그때 이제 내 친구가 어디.. 가수를 좋아해서.. 팬카페를 만들었거든.


  Q61. 가수? 아이돌이구나.

  A61. 어... 음... 아니... 그러니까... 음... 맞다.


  Q62. 이름이 뭔가? 하츠네 미쿠?  

  A62. 아니야. 건전한 거야. SM 소속이야.


  Q63. 아하. 그 당시엔 몇 개 없지. 소녀시대구나.

  A63. ... 모 가수 팬클럽 이라고만 해 달라.


  Q64. 알겠다. 걱정마라. 인터뷰 나올 때에는 그렇게 나올 것이다.

  A64. 고맙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소녀시대는 "소원을 말해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Q65. 여하튼 팬카페를 관리한 게 계기인가?

  A65. 네이버 카페는 위에 상단 배너가 있고 가운데 메인 배너가 있는데 이걸 매주 갈아줬다. 앨범 나오면 그 앨범 재킷에 따라 컬러 밸런스가 나오니까 거기 맞게 싹 갈아주고. 그때가 고1이야.


  Q66. 어, 그럼 되게 늦은 것 아닌가?

  A66. 맞다. 나는 남들보다는 되게 늦게 시작한 거다.


  Q67. 재밌다. 그럼 남들과는 다른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 계속 좀 들어보자.

  A67. 그림판 같은 걸로는 할 수 없는 기교가 있더라. 포토샵을 붙잡고 있었다. 재미있어서 이런 걸 많이 했다. 그때 내가 그거 한다고 하루 종일 컴퓨터만 잡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그림이라면 뭐 어릴 때 미술학원 잠깐 다닌 것뿐이었다. 거기 가서도 그림 안 그리고 구몬 수학 풀고 그랬다. 선생님한테 오늘 구몬선생님 와서 숙제해야 된다고 말하고 문제 풀고. 중학교 1학년 때.


  Q68. 이야 역시 국영수 위주의 대한민국 교육. 예체능을 천시하는 그런 예술인.

  A68. .....


  Q69. 그러고도 당신이 예체능 계열인가?

  A69. ..... 내 잘못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다. 여하튼 하루 종일 포토샵만 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나 몰래 미술학원 가서 상담을 먼저 받았더라고. 쟤가 하루 종일 저런 것만 한다고.


  Q70. 하루 종일 아이돌 덕질하는 거? 미술학원에서 그런 거도 치료해 주나?

  A70. 아니 그게 아니라 하루 종일 포토샵 한다고... 한 번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 이렇게 이야기가 오가서. 나는 거의 뭐냐 유배당하는 수준으로 미술학원에 끌려가서 투입된 거야. 그래서 마지못해 한 번 해 볼게 대답하고 다녔다. 연필 깎는 것부터 배웠다. 고1 겨울방학 때다.


  Q71. 늦게 시작하기는 진짜 늦게 시작했다. 혹시 천재 아니야? 내 주변에 빠른 애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뭐 입시미술 준비한다고 학원 다니고 요란 떨던데.

  A71. 그렇게들 많이 하더라. 나는 정말로 늦게 시작한 편인 것 같다.


  Q72. 근데 현재 성과는 대박이잖아. 이번에는 뭐 중국 프랜차이즈 음식점 캐릭터 굿즈를 디자인했다며? 네가 디자인한 게 중국에 쫙 깔리는 거 아닌가.

  A72. 부끄럽다.


  

  Q73. 확실히 재능이란 게 있긴 한가보다. 남들 응용할 때 혼자 기초만 하면 답답하지는 않았나?

  A73. 기초 할 때는 누가 해도 재미없어. 꾹 참고, 시키니까 하는 거야. 약간 게임에서 레벨업 하는 느낌이야. 일단 이 퀘스트를 깨야 다음 퀘스트가 나와. 이게 돼야 다음 걸 시켜주는 거야.


  Q74. 그 지루한걸 어떻게 견뎠나?

  A74. 그 와중에서도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요령이 늘고 실력 향상이 느껴지니까 그 뿌듯함을 안고 가는 것 같아. 난 기초가 지루하지는 않았어. 물감을 미묘하게 다르게 섞고 물도 다르게 해 보면서 종이에 색을 자꾸 연습했어. 색 연구를 되게 많이 한 거야. 그리고 나는 내 색감 자체가 무기라고 생각했어. 화방 가서 물감 사는 게 취미였다.


  Q75. 돈 많이 드는 취미로구나.

  A75. 아니다. 그래도 싼 거다. 한 튜브에 2400원짜리.


  Q76. 내가 썼던 둘리 물감은 한 통에 2천 원이다.

  A76...... 둘리 물감은 색감이 둘리 색이잖아. 기본 30 몇 색 이런 거 말고, 나는 남들보다 팔레트를 한 개 더 썼어. 그 당시에는 친한 애들이 이 색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레시피 물어보면 다른 레시피를 알려주고 그랬어. A를 물어보면 A'를 알려주는 거야.


  Q77. 독점욕이 있었구나.

  A77. 그렇다. 이 색은 나만 쓸 거야. 이건 내 거야. 약간 이런 거지. 내가 쓰는 색은 필살기로 남겨두고 안 알려주는 거야. 비슷하게는 알려줘도.


  Q78. 혹시 핑크 섞인 코랄이랑 코랄 섞인 핑크 립스틱을 구분할 줄 아는가?

  A78. .....


프랑크푸르트에서 커피를 마시는 정규민. 최근까지 전시회를 위해 독일에 있었다고.


  Q79. 네 작품에서 색이 주는 율동감이 거기서 나오는 거구나. 그럼 본인의 예술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A79. 음.. 내 예술은 음... 일단 경험을 쌓고 싶어서 손대는 게 되게 많은데. 요즘 관심 있는 건 편집 디자인 쪽이거든. 플랫 한데 2D? 기하학적인 거? 근데 나는 색감으로 표현하는 편이라서. 내가 제일 중요시하는 건 분위기야.


  Q80. 그러면 지금 추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디지털 아트의 일종이고. 그러면 돌고 돌아서 소녀시대 팬클럽 꾸미던 시절로 돌아간 것 아닌가?

  A80. 돌고 돌아서 그렇게 가고는 있는데.


  Q81. 돌고 돌아서 소녀시대가 최고다 라고 인터뷰에 적어도 되나?

  A81. .....


  Q82. 네가 자발적으로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있었던. 그런 열정을 태웠던 장르도 그쪽이고.

  A82. 그러고 보니 그러네?


  Q83. 내가 너의 예술 세계를 흔들까 봐 겁이 나긴 하는데. 네가 하고 싶었던 방향이 그쪽이 아니었나 싶어. 그래서 네가 그 열정을 가지는 부분은 그쪽이고, 이렇게 그동안 빙 돌면서 색감이라는 무기도 장착하고, 케냐에서 경험도 장착하고. 그걸 갖고 더 강력한 힘으로 네가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는 역량을 쌓고 왔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내 이야기에 구속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암튼 그런 거 보면 아직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장르로써나 표현으로써나 발전 중인 아티스트.

  A83. 오늘 이야기 재밌네.


  Q84. 필름 끊길 때까지 가자.

  A84. 3차 가자.


그의 예술세계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한 명의 팬으로서 기대가 크다.



  "우리 아트워크 그룹을 만들지 않을래?"

  "어떤 거?"

  "우리 어차피 협업도 자주 하잖아. 내가 책 쓰면 표지도 너한테 매번 부탁했고. 그런 우리의 작품을 같은 공간에 전시할 수 있는 그런 온라인 스튜디오를 하나 만드는 거야."

  "어 그거 되게 좋은데?"

  "이걸 몇 년이나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평생 디자인할 거고, 나도 평생 글 쓸 텐데 그게 10년 정도 쌓이면 엄청난 게 나오지 않을까?"

  "그렇지. 어떻게 보면 인터넷상에 내 갤러리를 차리는 거잖아? 내 마음대로 마이웨이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좋다."

  "효석이도 납치해 와야 되는데."

  "일단 효석이 전역 기다리고, 우리끼리 먼저 시작하자."

  "그렇지. 스튜디오 이름은 당연히?"

  "치즈케익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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