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학생이 되면 좋은 점
"언니,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가 배우는 학생이 되니 너무 좋은 거 있죠"
결혼하면서 더욱 왕래하게 된 후배 A가 말했다. 그녀는 고등학생 대상으로 수업을 하다가 최근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원에 등록했고, 나는 최근 대학원에 합격해서 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다시 학생이 된 소감을 주고받으며 서로 맞장구를 치는데, 마지막에 덧붙인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수해도 돼서 너무 좋아요”
여느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나 또한 자잘한 실수가 있는 편이었다. 첫 직장에서 작은 실수에도 크게 혼나서인지 이후에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실수하지 말아야 해’, ‘틀리지 말아야 해’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일하면서 스트레스는 계속 받을 수밖에 없는데, 실수할까봐 그 스트레스를 스스로 1.5배 증식시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유는, 결국 ‘혼날까봐’였던 것 같다. 실수 후에 그 책임을 혼자 오롯이 떠안게 될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실수하더라도 그 이후를 잘 해결하면 될 일인데, 지레 겁먹고 스트레스부터 받았다.
그래서 “실수해도 돼서 좋아요”라는 후배의 말을 듣자, 실수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에너지를 쏟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역시 학생이 되니 좋긴 좋구나. 학생이 되니 좋은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질문하기'였다.
며칠 전 수강신청을 완료했다. 듣고 싶은 과목을 맘껏 신청했고, 학부생 때처럼 박 터지게 수강신청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신기했다. 첫 학기 개강을 앞두고 기대가 커서 그랬던 건지, 대학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나는 어떤 태도로 수업을 듣게 될까 상상을 하기도 했다. “교수님 그건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왜요?”라고 왠지 겁 없이 계속 질문을 던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마음껏 질문해도 된다는 것.
첫 교직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 같은 부서에 있는 선배에게 좀 알아보고 와서 질문하라며 혼이 난 적이 있다. 내가 그게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알아보고 질문하란 거야? 나중에서야 나도 신입에게 일을 가르치면서 그 말을 했던 선배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기도 했다.
그렇게 혼나고 나니, 무턱대고 질문하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상사가 내게 일을 지시했을 때 '왜 이걸 해야 되는지, 왜 이렇게 해야 되는지?'라는 질문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제는 마음껏 질문해도 된다. 직장을 다니다가 학생이 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수강신청을 앞두고 교수님께 개설 강의에 대한 문의 메일을 쓰는데, 뭔가 어색했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닌데 꼭 교직원으로 일하는 것처럼 메일을 썼기 때문이었다. 제목도, 본문 구성도 분명 나는 학생인데 교직원처럼 메일을 쓰니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래, 그동안의 내공이 어디 가겠어.
실수할까봐 끙끙거리고, 선배에게 질문하기도 전에 덜덜 떨고, 질문하는 것 자체도 어려워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견디고 내공 충만해진 나 자신이 기특하다. 그동안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이제 프로같은 대학원생 생활을 누려야겠다.
Instagram: @aran.chaaa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