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 4편
*<어느 치매 노인의 일기>는 90대 치매 할머니와 60대 딸, 20대 손녀가 함께 살며 겪는 따듯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엮은 장편 소설입니다. 본 소설은 완결까지 탈고된 상태로 브런치 공모전 용도로 맛보기차 업로드합니다. 공모전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한 편씩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꽤 오랜 시간 안정을 찾는 듯했던 할머니의 행복한 도시 일상에도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어느 날, 평소처럼 빈 집을 나와 동네를 돌아다니던 할머니는 급하게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쉽게 둘째딸이 장만해준 폴더폰에 달린 전자키로 혼자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전화 거는 법도 모르는 핸드폰이었지만, 가족들이 비상시 위치 추적을 위해 장만해준 폴더폰이었다.
치매가 심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 번씩 울리는 자식들 전화 받는 재미가 있었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손자 사진을 저장 해놓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화 받는 법도 까먹은 치매기가 도는 할머니에게 더 이상 직접 전화를 거는 자식은 없었다. 할머니의 핸드폰은 이제 전자키가 달린 열쇠 꾸러미에 불과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갈수록 현관문에 달린 센서에 전자키를 정확히 가져다 대는 것마저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가 대신 현관문을 열어주길 기다렸다. 하필 그날은 월요일 오후인지라 몇 시간이 지나도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할머니는 그대로 바지에 똥을 싼 채로 한 시간 가까이 아파트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다행히 일찍 퇴근하고 돌아온 둘째 딸이 어떻게 벗었는지 똥이 담긴 팬티를 몸 뒤로 숨기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몇 시간만에 뒷처리를 할 수 있었다. 엉거주춤 계단에 걸터앉아 기다린 덕에 아주 잘 빚어진 똥이었다. 치매에 걸려도 여전히 배변활동이 왕성한 할머니였다.
그 뒤, 할머니의 치매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그렇게 먹성 좋던 할머니는 더 이상 식탁 위에 준비 해놓고 나간 간식을 손도 대지 않았다. 밥도 온종일 굶다가 누군가가 옆에서 떠먹여줘야 한 그릇을 겨우 비웠다. 둘째딸이 엄마 밥 안 먹으면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뭘 먹고 있으면, 자신이 밥을 먹었다는 사실도 잊고 자기는 왜 밥을 안주냐고 땡깡을 부렸다.
화장실을 갈 때도 행여나 넘어질까 항상 누군가가 따라 들어가서 지켜봐야만 했다. 밖에 나갈 때 전자키가 달린 폴더폰을 가지고 나가도 문을 열 수가 없어 아파트 입구에서 몇 시간 동안 벌벌 떨고 있는 일이 잦아졌다. 설령 나간다 한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아파트 현관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멍 때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가족들은 고민 끝에 임시방편으로 할머니에게 노인용 기저귀를 채우기로 하였다. 자존심이 굴뚝같은 할머니는 나는 이런 걸 못 입는다고 반항하였으나 별다른 방편이 없었다. 본인이 볼 일을 봐 놓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그래도 할머니는 가족들이 안 보는 사이 불편하다고 기저귀를 북북 뜯어놓기 일수였다. 그러면 또 비싼 기저귀를 찢어놨다고 둘째딸에게 혼나기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기어이 기저귀에 똥오줌을 가리는 대신 화장실에 가 기저귀를 팬티 마냥 쭉 내리고 볼 일 보기를 고집했다. 본인은 기저귀를 적시기 전에 화장실을 갔다고 생각했으나, 기저귀를 쭉 내렸을 땐 자주 흥건히 오줌바다가 된 기저귀가 있었다. 둘째딸은 기저귀를 채우는 것도 일이지만, 장시간 집에 혼자 있는 할머니의 기저귀를 자주 바꿔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는 걸 얼마 안 가 깨달았다.
이 즈음에 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노인정의 할머니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예전에는 아무도 없는 낮 시간 동안 동네 노인정에 간식을 싸들고 종종 놀러가던 할머니였다. 비록 노인정의 할머니들은 도시 할머니들이었으나, 낮 동안 빈 집에서 시간을 떼우는 건 시골에서 올라온 자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해가 바뀔수록 익숙했던 얼굴들이 하나 둘 사라지자 할머니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수다 떨던 할머니 하나가 사라지면 할머니는 몇 달 동안 우울증과 악몽에 시달렸다. 늘 딸이나 손자손녀가 모시러 노인정까지 찾아온다고 부러워하던 할머니들이 하나 둘 사라지자 할머니는 결국 완전히 노인정에 발길을 끊었다.
그때부터 할머니 머릿속에 노인정은 가면 죽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대신 오밤중에 혼자 일어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대신 아기 마냥 찡얼거리는게 늘었다. 예전만큼 바깥에 나가질 못하니 밤마다 우울증에 “내가 죽어야지” 하며 엉엉 울기도 하였다.
이쯤 되자 더 이상 할머니를 빈 집에 혼자 두는 게 불가능해졌다. 둘째딸은 자기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할머니만 돌봐야 하나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더 이상 밤마다 엉엉 우는 건 할머니뿐이 아니었다. 둘째 딸은 할머니가 밖에 돌아다니거나, 이불을 적실 때마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일터에서도 할머니 걱정에 조마조마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에 오면 온종일 쫄쫄 굶고 있던 할머니와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자식들이 할머니에게 잘하고 집안일을 도와준다 한들, 할머니가 투정이라도 부리면 집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그 긴 세월을 할머니와 함께 살아오며 겪은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부터 자식된 도리로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둘째딸이 희생한 십여 년의 괴로움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를 보살피며 힘들어하는 엄마를 지켜본 두 아들딸을 빼고 형제자매조차 둘째딸의 고통을 몰랐다.
둘째딸이 지극 정성으로 할머니를 돌본 걸 반박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둘째딸은 이미 노인네라면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화점에서도 노인네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환멸이 났다. 하루 온종일 시간 죽이는 것 외에 할 일 없는 노인들은 낮시간만 되면 매장을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곱게 구경만 하고 가면 몰라, 사지도 않을 물건을 헤집어 놓으며 사람을 달달 볶았다. 설령 뭔가 사간다 한들, 다음 날이면 자식들이 쓸데없는 걸 샀다고 뭐라 한다고 환불해달라고 또 찾아와 따졌다.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노인들을 상대하고 나면 진이 빠져버렸다. 둘째딸 마음 속에 노인에 대한 연민과 환멸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자기 엄마도 외로우니 그렇게 돌아다닌 거겠지 하면서도, 잃어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연민 또한 버릴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를 닮아 큰 욕심 없이 희생하고 살아온 둘째딸이었다. 누구보다 형제자매를 아끼고, 토끼처럼 자기 가족들을 챙기며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세 딸 중 둘째딸로 태어나 무조건 큰딸 옷을 물려받고, 좋은 건 막내딸에게 먼저 돌아가도 불평 한 번 한 적 없었다.
대한민국의 아주 평범한 가족이었지만, 그런 평범함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할머니를 모실 사람이 필요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자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져 점점 무거워지는 둘째딸의 무조건적인 희생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의 끝은 누구도 기약할 수 없었다.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