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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Oct 11. 2020

오늘 이 글을 보게 된 건 필연이다.

자신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주파수의 기운을 끌어들인다. 


이 글은 "태어나버린 이들을 위한 삶의 방법론" 브런치북 중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자기 자신의 가장 어두운 내면과 조우하는 무의식의 여정을 그린 에세이집 <말장난>의 브런치북 버전입니다. 이번 에피소드만 읽으셔도 독서흐름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완독 후, 자신을 찾고 계신 분들은 첫 에피소드부터 천천히 즐겨주세요



그동안 책을 쓰고 작품후기(?)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에 대한 사뭇 고정적인 선입견이 몇가지 있었는데, 이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 내가 내 작품에 대한 후기를 쓰는 건 뭔가 싸질러 놓은 말에 대한 포장지를 덧대이는 가식적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문학작품을 써야 작품해설이나 후기가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장난> 같은 경우 특히나 글을 완성한 시기와 출간된 시기 사이 무려 4년이라는 텀이 있어, 그동안 바뀌어버린 나의 사고가 원본을 왜곡할 수 있다는 염려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이 책을 쓰며 이미 원없이 할 말, 못할 말을 모두 털어놓았기에 글에 부연설명할 일이 없었다. 사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라고 믿어 나의 생각을 억지로 주입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해석이 아닌 독자의 해석으로 작가 또한 새로운 시각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데 작가가 개입할 합리적 이유가 있었을까. 원체 말이라는 것이 단 두 사람 사이에만 이루어져도 그 뜻이 완벽히 전달되기는 불가능한데, 하물며 책 한 권으로 독자와 소통을 한다는 건, 그 뜻을 완벽히 이해하면 그것이야 말로 지루한 기적이었다. 


둘, 글을 처음 탈고 했을 당시, 나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일렬의 사건들과 느낀 감정들은 분명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어떠한 우위를 줬지만, 내가 정식 심리상담사나 정신과의사가 아닌 이상 1인칭 시점 말고 3인칭 시점으로 나의 상황을 묘사하기에는 역량이 딸렸다. 비유를 하자면, 꿈은 내가 꿨지만, 꿈풀이는 꿈해몽가가 더 잘하는 것과 같았다. 나 또한 1인칭 시점에서 나의 경험담을 공유할 뿐, 그 속에 담긴 함축적 의미나 과학적 진단(?)과 분석은 완벽히 내리지 못한 탓이다. 나도 내가 뭘 모르는 지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첨가한단 말인가? 글을 쓸 당시에는 나름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방대한 양의 조사와 자문을 구했지만, 결국 시간만큼 나를 객관적으로 납득시켜주는 해설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한 후에야 내가 겪은 일과 감정에 대한 총체적 그림을 맞출 수 있었다. 아마 정말 쌩뚱맞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말장난>을 출판하게 된 것도 내가 알지 못하는 힘의 작용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마지막 가장 큰 이유는, <말장난>은 이미 나에겐 지나가버린 과거의 한 단원인데, 더 성숙해버린 사고로 내 과거의 생각을 타인에게 피력하는 것이 모순적이기도 하고 생각치 못한 고역이었다는 점이다. 출판이라는 것이 탈고를 하는 것은 겨우 첫걸음이고, 결국 내가 내 책을 달달 외울 때까지 같은 말을 쌈박하게 반복하며 마케팅을 하는 일이다. 글은 글이고, 책도 결국 하나의 제품인데, 내가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는 제품을 홍보하는 기분이 들어 작품을 다시 들춰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게 바로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재입대의 악몽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책을 처음 접한 독자야 처음 읽는 내용이니 이게 무슨 생오버인가 싶겠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만큼, 나는 그저 책을 엮어 출판을 했으니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러한 나의 고집을 바꿔 놓는데는 나를 치유해준 시간과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컸다. <말장난>에 대한 전반적인 평은 한마디로, "뭔가 엄청난 걸 읽은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였다. 그래서 첫 장만 7번 읽었다는 독자분도 계셨고, 처음에는 뭔 소린지 욕하면서 읽다가 점점 빠져들어 자기도 모르게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독자분도 계셨다. 적극적으로 홍보하진 않았지만, <말장난>을 빌미로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엔 얼추 아는 지인들도 있었고, 얼굴을 모르는 독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사회적으로 제법 저명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불안과 절망에 취해 경험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가장 박식하거나 높으신 분들조차 글이 어렵다고 종종 평하곤 하셨다. 내가 나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느낀 지금에서야 이 말을 반추하자면, 당시에는 나도 결국 내 생각과 감정에만 취해 나 스스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황하게 글이 풀어졌나 싶기도 하다. 


나야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본떠 글자로 옮겨적은 것 뿐이니, 당연히 나에게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는 글이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온전한 그림 -- 즉,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작품을 쓰는데 끼친 영향 등--을 제외하고 글묶음만 딱 던져놓는 건 문제를 끝까지 읽어주지도 않고 문제를 풀라는 것과 동일한 일임을 깨달았다. <안네의 일기>가 일반 사춘기 청소년의 망상 가득한 일기장에서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메김을 하게 된 것도, 결국 그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배경이 가장 컸던 것처럼 말이다. 


더군다가 <말장난>은 "나만을 위해 창조한 세계"에서 "나만을 위한 언어"를 탄생시킨 글인데, 이건 외계문명으로 독자들을 데려가 알아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라는 불친절함이 독자에 대한 예우라 아니라고 뒤늦게 판단했다. 사실, <말장난>에 사용되는 무수한 비유들은 (책 자체가 하나의 비유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글쓴이에게는 정확한 의미가 전달이 될지는 몰라도 책 밖의 독자들에게는 외국어만큼이나 난해할 수 있는 글이다. 이는 각 사물이나 사람이 지칭하는 바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의미에서의 언어가 아닌 <말장난> 세계에서 지칭하는 함축적 의미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요약해서 꼭 집어말하자면, <말장난>은 자기 자신의 가장 어두운 내면과 조우하는 자칭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 책을 하나의 성장록이자 자기성찰록이라 묘사한 것이다. 흔히 Darknight of the soul이라고 부르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자기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의 조우,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의 트리거(trigger), 그리고 영적 성장을 직접 겪으며 라이브로 기록한 글이다. 개정판 책날개에도 얄밉게 한마디 던져놨듯이, 사람의 의식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게 되면, 뇌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만의 내면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까지 창조하게 되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고나면 결국 스스로 창조했던 세계와 언어를 파괴하고 모든 것을 말끔히 소멸시킨다. 그래서 <말장난>의 마지막 부분도 결국 이 괴로웠던 성장의 여정이 하나의 "말장난"에 불과했었다고 치부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창조했던 세계와 언어가 파괴되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두어두던 것들을 깨고나와 구원과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써, 겪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글을 완성하고 나니 나도 한 단계도 빠짐없이 똑같은 과정을 묘사해놨더라. 


이는 내가 있어보이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실제로 정신분석학, 심리 프로파일링, 트라우마 치료, 영적경험에 관한 조사를 해보면 금방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특히나 트라우마 충격이나 예술적 창의력 폭발을 겪어본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한 번도 미쳐보지 않은 사람은 진짜 살아본 적이 없다는 어느 천재 예술가의 말처럼. 나는 <말장난> 집필 당시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으로 최소 2년 정도 이런 심화된 과정을 겪었었다. 이 여정을 일찍이 겪은 덕분에 나는 일반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도, 들어본 적도 없는 정신분석학 한 분야의 경험파 준박사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영혼의 어두운 밤"의 여정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설명이나 조언도 없어 자신들의 상태를 단순한 우울증, 조울증, 심지어는 정신분열증 정도로 치부하고 만다. 나 또한 그때 당시 나의 상태를 정확히 일러주는 사람이 없어 반정신병 환자 취급을 받아보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롱을 하고, 멸시를 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알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면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그라든다. 막연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며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무지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자칫하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제도화되지 않은 지식 중 하나로 심도있는 정신분석학이나 영적경험에 대한 대중의 저조한 이해도, 그리고 편견이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공포감으로 다가올지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감탄할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정신적이나 영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첫 <말장난>은 특히 집필 당시 출간 계획을 단 한번도 염두해본 적 없이 오히려 누가 볼까 철저한 고립 속에서 쓴 글이었다. 그런데 그 꼭꼭 숨겨두던걸 어찌어찌하다보니 빨개벗은 모습 그대로 세상에 툭 튀어나오게 된 아이다. 덕분에 나는 외부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그렇게 날 것 그대로의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이러한 고립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불러온 경이로움과 혼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이 점을 간파한 어느 독자분의 날카로운 후기에 의하면 책의 "사유가 너무도 명백히 작가 소유인 것이 느껴져 내가 스며들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하더라. (이런 표현을 하는 독자님은 도대체 훗날 어떤 책을 쏟아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단지 구태여 안 겪어도 될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을 비스무리하게 해 본 사람으로, 어느 정도 같은 여정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질감과 연민을 느낄 뿐이다. 내가 겪은 "영혼의 어두운 밤"은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성장통이나 변성기처럼 흔히 겪는 과정이다. 그런데 경험 자체가 워낙 정신적이고 사적이다보니 대중적인 개념이 잡혀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개고생할 뿐이다. (나만 개고생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내가 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더 우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겪는 인생 우여곡절이 다른 것처럼, 누구는 이번 생에 조금 더 별난 일을 겪고 누구는 조용히 지나가고 할 뿐이다. 


후기를 쓸 생각이 없었다는 사람의 후기치고는 굉장히 말이 많은 후기였다. 사실 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는 내가 그동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하게 된 정보량이 많아져 글이 길어졌을 뿐이다. 


나는 정말로 그 어느 누구와도 이런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 남들보다 조금 더 험했던 내면의 아이를 마주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 과정을 겪었다. 천둥, 번개의 원리를 이해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번개가 칠 때마다 하늘이 노하셨다고 벌벌 떨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사실 알고나면 시시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데 무지의 상태에서 겪으면 잊을 수 없는 공포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알고 나서 괴로워하는 걸 무지해서 두려워하는 것보다 추천한다. 더군다가 이런 정보의 홍수 시대에 "무엇을 알아야하는가"의 "무엇"을 몰라 방황하는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누구나 처음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르켜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다만 작은 기대가 있다면, <말장난>을 접하는 독자 중 누군가는 그것을 하나의 신호로, 구원의 손길로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말장난: 태어나버린 이들을 위한 삶의 방법론> 中 "작품후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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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작가님 자신을 위해 써왔던 글들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넘쳐흘러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을 때 소통의 진정성은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분이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소통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와대에서 보낸 "말장난" 독서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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