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by 닐슨

옷도 없고 집도 없고 먹지도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바틀비. 성은 모른다. 그의 직업은 복사기가 생겨나면서 사라지게 된 '필경사'. 그는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새로운 업무지시를 받았을 때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릴 적 읽었던 [모비딕]을 쓴 작가인 허먼 멜빌이 쓴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읽게 되었다. 제목의 '필경사'가 무엇인지 잠시 멈칫했지만 우리말이 그렇듯 글을 베껴 쓰는 사람이라고 쉽게 추측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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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인 19세기 중반의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외부에서 거의 이천만 명이 넘는 이민자가 미국으로 들어왔고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노동자의 권익으로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기존의 가치관이 충돌하던 시기였다.


소설은 변호사의 독백으로 주요 인물의 소개를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필경사인 터키와 니퍼즈, 잔심부름을 하는 진저 넛 그리고 주인공 바틀비가 그들이다. 책이 쓰인 지 오래전이고 이미 많은 번역본이 있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터키는 원문에 Turkey라고 되어있고 칠면조를 의미한다. 칠면조처럼 오후가 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다혈질의 성격이 드러나는 인물이다. 니퍼즈 역시 Nippers로 되어있고 전선을 자를 때 사용하는 뾰족한 공구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성격 역시 뾰족하고 생김도 그러한 인물이다. 공구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그는 손재주가 좋다고 되어있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책상 높이조차 잘 맞추지 못해 가끔은 짜증을 내는 인물로 묘사되어있다. 그리고 사무실의 잔심부름을 하는 진저 넛(Ginger Nut)은 두 필경사의 간식거리인 생강으로 만든 혹은 생강이 들어간 빵과 사과를 조달하고 잔돈을 챙기는 12살 소년으로 묘사되어있다.


사무실의 업무가 늘어나 바틀비를 필경사로 충원하게 된 변호사는 업무지시를 하지만 바틀비는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필사한 후 정오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 나누어 읽으며 점검을 하자고 할 때 바틀비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강한 거절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은 매일처럼 반복된다. 당연히 사무실의 다른 필경사들은 바틀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휴일에 들렀던 사무실에서 바틀비는 셔츠만 걸친 채로 나타난다.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바틀비는 진저 넛이 조달하는 생강빵을 먹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의식주 모두를 바틀비는 거부한 것이다. 결국 바틀비는 쫓겨나게 되고 '툼즈 구치소(무덤을 뜻하는 Tumb를 사용했다)'로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가 쓸쓸하게 죽게 된다.


그가 죽은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기 전에는 배달 불가 우편물(원문에서는 nixie가 아닌 Dead Letter라고 되어있다)을 모아서 정리하고 소각하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바틀비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읽기를 수차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바틀비가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까. 배달 불능 편지(Dead Letter) 속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 배달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수신자가 없는 수많은 사연을 쌓아두고 그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소각할 때, 바틀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또 다른 관점에서 바틀비가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하는 일이란 게 반드시 글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수 있다. 똑같이 베껴 쓰는 일이기에, 또 배달 불능 편지 역시 주소나 내용을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기에 바틀비는 글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IMG_2187.jpeg 다른 번역본의 같은 책


소외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바틀비는 '그것'을 선택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거부했고(심지어 돈을 거부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 ‘거부를 선택'한 것이다. 생존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바틀비는 죽음과 소외를 선택한다.

생존과 죽음. 그 앞에서 나는 얼마나 겸허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 바틀비와 같은 삶을 살지만 스스로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머리에 남아있는 깊이 있는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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