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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_장소_3.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강남도서관에서 5개월 남짓 근무하면서 일용직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취업 공고를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마침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계약직 자리가 내 눈에 뛰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라고 하면 왠지 대학도서관 중에서도 체계적이고 이제 갓 사서 일을 시작한 나에게는 최고의 직장일 될 것 같았다. 입사지원서를 내고 합격 통보를 받고, 부모님도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1946년 서울대학교 개교와 함께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출발하여서 1992년에 중앙도서관으로 개편된 곳이었다. 나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수서정리과 그 중에서도 연속간행물수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그때 당시 직원들은 ‘중도’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다양한 분관(법학, 공학, 의학, 수의학, 치의학, 농학, 음악도서관, 규장각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 중에서도 중앙도서관은 여러개의 도서관들 중에서 중앙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중도’라고 사서들 사이에서는 불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답게 도서관도 학생들의 전공과 관련해서 좀 더 세분하게 분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나의 주 업무는 중앙도서관에서 구독하고 있는 다양한 연속간행물(주로 학술지)을 제본(바인딩)하고 이 작업이 끝나면 제본된 간행물의 서지정보를 도서관 정보관리시스템인 SOLAS에 입력하는 일을 하였다. 작업해야 할 종류도 다양했지만 그 양도 방대해서 나를 비롯해 다른 한명의 계약직 직원 두 명이 이 업무를 주로 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들끼리의 모임이었다. 도서관의 규모나 장서수가 매우 컸기 때문에 공무원으로 임용된 사서직 이외에도 나와 같은 계약직 사서 직원들이 몇 십 명은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이 공무원이 아닌 우리들은 점심시간에 주로 모여 같이 밥을 먹고 각각의 부서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근무할 당시 내 나이 24살 때이다 보니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교내에서 만나거나 도서관에서 마주칠 때 훈훈한 남학생들이 지나가면 설레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들 중에서 외모가 훌륭한 요원이 새로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그 공익근무요원을 보려고 일부러 사무실에 들리기도 했다.


대학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방학기간은 단축근무가 있었다. 이용자가 많이 없기도 하고, 장서점검이라고 해서 도서관 장서를 1년에 한 번씩 점검하고, 방역하는 작업도 있어서 퇴근 시간이 한 시간 일찍 앞당겨지는 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드넓은 캠퍼스도 잊지 못한다. 사계절을 지내보니 각 계절마다 꽃과 나무들이 다양한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3개월 남짓 수서정리과에서 근무하다가 2002년 해가 바뀌면서 나도 근무처를 정보관리과 전산실로 옮기게 된다. 당시 내 사수였던 사서직 공무원의 승진과 함께 1+1처럼 나도 함께 정보관리과로 계약직에서 'BK21사업' 계약사서직으로 신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사서 계약직도 여러 등급이 있었다. 일용직(보통 3개월 미만 계약기간), 계약직(1년 계약), 무기계약직(1년 단위로 계약 연장) 등이 있었다. 'BK21 사업'은 1999년에 교육부가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고 학문후속세대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고급인재양성 사업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서울대학교에서도 지원금을 받아서 도서관 사서 인력을 충원하는데 사용되었다. 그 수혜자가 바로 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정보관리과 직원 중 제일 막내로 사회생활 최대의 황금기를 보내게 된다. 2002년에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전산실에서는 도서관리정보시스템인 SOLAS를 업그레이드하여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가장 큰 업무였다.


당시에 INEK(아이네크)라는 프로그램개발회사에서 도서관 전산실에 상주하면서 사서들과 도서관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된 회의와 업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다. 마침 내 자리 옆 쪽에 파티션으로 분리하여 프로그램 개발자들의 자리가 있었다. 프로그래머들은 모두 남자 직원들이였다. 도서관의 사서는 보통 아시다시피 여자들이 대다수이다. 문헌정보학과의 학생들도 대부분 여학생들이 주류이기 때문에 대학시절에도 남녀공학이었지만 우리 과는 남학생 2명, 여학생38명으로 구성되었었다. 여학생 쏠림이 아주 심한 과였다.


도서관에서 동료로 남자 직원과 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전산실은 남자직원들로 가득한 최적의 근무 장소였다. 전산직 공무원들도 미혼의 남자직원 두 분이 근무하고 있었고, 프로그래머들도 모두 남자들이었다. 25살 꽃 청춘이었던 나에게는 출근하는 길이 설레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니 말이다. 그때 당시 프로그래머 중에 아주 훌륭한 외모를 소유한 훈남이 있었기에 그 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는 외모를 가꾸는데도 노력했던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SOLAS 버전 II는 기존에 사용하던 도서정보관리 시스템(SOLAS)에서 여러 기능을 추가하고, 사서가 도서의 데이터베이스를 다양한 형태로 구축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인터페이스도 좀 더 새롭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 쪽에서도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반영하여 이용자들에게 편리하고 이용하기 쉽도록 구성되어졌다.


20년 전 일이지만 당시에 메타데이터(metadata)라는 개념이 학계에 등장하면서 데이터(data)에 관한 구조화된 데이터라는 메타데이터 개념을 도서관에도 도입하여 도서검색이나 서지정보(저자, 제목, 주제)를 추출하는데 적용하고 프로그래머들과 교수님, 연구원들이 함께하여 도서정보관리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러 곳의 분관을 갖고 있어서 중앙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앙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도서관정보관리시스템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 SOLAS II 버전이 개발되고, 완성된 프로그램을 상용화하기 전에 오류나 다양한 변수들을 체크하는 일이 나의 주요 업무였다. 사서들은 책이 입고되면 도서정보관리시스템에 등록하고, 다양한 서지 정보들을 툴에 맞춰서 입력한다. 이렇게 입력된 데이터를 통해 이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검색창에 입력했을 때 정확한 자료를 매칭하여 제공하는 것이 도서정보관리시스템의 주요 역할이다.


2002년 6월은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로 온 나라가 길거리 축구응원으로 정말이지 난리가 났던 핫한 해였다. 내 인생에도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한 해이기도 했다. 그해 7월쯤 엄마가 급성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황달의 원인이 담석인줄 만 알고 담석 수술을 하려고 입원한 병원에서 엄마의 병명이 췌장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췌장암 수술을 받으시고 투병을 시작한 엄마의 곁을 지키기 위해 나는 2002년 8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을 퇴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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