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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I_사람_1. 일용직 vs 기능직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도서관이라는 곳에 처음으로 발도장을 찍은 곳이 서울시 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이었다. 나의 신분은 일용직으로 사서도 아닌 사서 보조업무를 하는 직책이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도 급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2001년도에 도서관 취업 환경도 그리 좋지 않았다. 요즘 취준생들이 겪는 어려움만큼 1997년 IMF가 휩쓸고 간 뒤 도서관에도 비정규직, 계약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졸업 후 취업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한 게임회사에 인턴으로 인사담당 부서에 3개월간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으니 전공을 살려보고 싶었다. 당시 대학 동기 중에는 오히려 사서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서직 채용공고만 올라오는 인터넷 구인구직사이트에서 일용직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무슨 일을 하기에 ‘일용직’이라는 건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근무하게 된 자료조직과에는 총 7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중 교육청 사서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서직 공무원 6명과 기능직공무원이라고 칭하는 시험없이 서류전형과 면접으로만 채용된 한명의 공무원이 있었다. 그리고 서류전형과 면접으로 한시적으로 근무하는 일용직 나를 포함해서 8명이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다. 사서직 공무원들 중 연차가 제일 높은 사서가 자료조직과 팀장을 맡았고, 기능직 공무원 사서는 나머지 사서들과 같은 일은 하지만 수당이나 급여 등 신분의 차이가 난다고 했다. 당시 기능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서는 마침 내 대학 선배님이었다. 그래서 선배님은 나에게 무조건 공무원 시험 봐서 사서가 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내가 느낀 점은 도서관도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것이었다. 공무원 신분에 따라 연차에 따라 하는 업무도 다르고 누릴 수 있는 영역도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기능직은 일반 사서직 공무원들의 업무보다는 단순한 사무직 행정보조 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문헌정보학을전공하고 누구는 사서의 업무를 하고 누구는 단순한행정업무를 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4개월 남짓 근무했던 첫 공공도서관 일용직 사서의 대접은 아르바이트 시간제 근무자 느낌이었다. 임시직이니 일단 내 자리도 없었고, 사무실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도 따로 없었기에 나를 ‘OO씨’ 라고 다들 불렀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신참인 나에게 직함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 기분이 좀 그랬다.


사무실에서 내가 하는 업무도 아침에 팀장님이 보는조간신문 챙겨오기, 자료조직과로 들어오는 우편물 찾아오기 등 단순 서무 업무가 더 많았다. 그리고 함께 근무했던 사서분들도 연차가 다 있는 분들이었기에 그때 당시에는 그 분들이 나를 ‘OO씨’라고 부르는게 뭐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공공도서관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체득한 것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려면 공무원으로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발령받고 근무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서직 공무원의 경우는 도서관이 소속되는 기관에 따라 시험전형도 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기능직 선배님의 조언대로 사서직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안정된 사서의 길은 가지 못했다. 문득 그 때 그 기능직 선배는 다시 시험을 봐서 정규 사서직 공무원이 되셨는지 가끔 생각이 난다. "OO선배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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