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_장소_2.강남 도서관
2001년 2월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교직 이수를 해서 나는 '2급 정사서' 자격증과 '사서교사' 자격증을 손에 들고 대학의 문을 나오게 된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997년 IMF가 터지고 2001년 당시에도 사서직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4년 동안 배운 전공을 꼭 살려서 도서관이라는 곳에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사서라는 직업은 전문직이라고 생각했고,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사서라는 직업을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졸업 후 사실 인츠닷컴이라는 일반 회사에서 인턴으로 3개월을 근무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HR부서라는 인사담당 부서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단순업무인 엑셀로 직원들의 연말정산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숫자만 기입하는 일이 재미가 없었다. 이러려고 문헌정보학을 4년 동안 공부했던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에 일용직으로 올라온 사서 채용공고를 보고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남도서관에 지원하게 된다.
졸업 후 사서로서 첫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에서 학교도서관 지원 업무를 도와주는 업무가 주된 것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도서관에서 직접 사서들이 MARC(Machine Readable Cataloging) 기계 가독화 목록 작업을 했기에 자료봉사과에서 사서 선생님들에게 MARC 작업하는 것을 배워서 컴퓨터 자료관리 프로그램에 도서의 서지정보를 입력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였다. 학교도서관 지원업무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곳이 서울시교육청 소속의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서울시 내에 초등학교 학교도서관 개관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서직 공무원 이외에 추가로 일용직 노동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2001년 당시 서울시에 있는 초등학교 내에 도서관은 시설이 매우 열악했었다. 지금도 경기도에 비하면 서울에 있는 학교들의 도서관은 시설이나 운영도 매우 뒤쳐져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자료봉사과의 사서 두 분과 함께 3곳의 초등학교 도서관 개관 컨설팅 업무와 자료 정리 업무를 지원했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출장으로 초등학교 도서관을 직접 방문하여 도서관 개관 시 필요한 업무들을 알려주었다.
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는 한명도 없었고 사서도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 개관을 담당할 교사도 마땅히 없었고, 국어교과를 담당하는 교사가 도서관 업무를 도맡아서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의 신분은 사서도 아닌 사서보조였기 때문에 사무실 내에서도 내 자리는 따로 없었다. 사무실 구석진 곳에 컴퓨터 한 대를 놓아주고 그 자리에서 도서 정리 작업과 MARC 서지데이터 입력 작업을 하였다. 함께 일하는 사서 선생님들이 갓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기도 했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월 급여는 세금을 공제하고 80만원이 조금 넘는 박봉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은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취업해서 초봉이 200만원이 된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사서 고생하는 사서의 길에 자원하여 첫발을 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