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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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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y 18. 2020

방멜리아

시엠립

다음날 아침.

역시 푹푹 찌는 방 때문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일어나보니 침대가 또 땀범벅이다. 다행히 4인실에 같이 머무는 내 위층에 있는 한국인 여자 둘과 내 옆 침대에 있는 일본인 남자분은 아침일찍 어디 갔나보다. 화장실이 그 좁은 방에 딸려 있는 구조라 어제는 눈치보여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바로 샤워를 못했는데 오늘은 일단 상쾌하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러고 1층 카페테리아에 멍 때리고 앉아있으니 코지와 다이스케가 내려온다. 


“잘 잤어?”

역시 예상한 반응이 나온다.

“아니 어젯밤도 너무 더워서 잠이 안와서 잠을 설쳤어. 너는?”

피식 웃으며 나는

“나도야. 어떻하지? 오늘 방 옮기기로 했잖아” 

일단 너무 더워서 잠도 못자고 힘도 없어서 아침을 먹으면서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아침을 먹으니 늘어져서 귀찮아져 

“그냥 오늘만 좀 더 참고 내일은 진짜 방 옮기자”

이게 남자들의 동남아 여행이다. 대충 먹고 대충 잔다. 그냥 다 귀찮다. 밥 굶지 않고 등 대고 누워서 잘 공간만 있으면 된다. 

오늘은 뭐하지 하다 옆테이블에 앉아서 방멜리아라는 곳에 간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방멜리아가 진짜 멋있대요. 거기가 애니메이션 라퓨타 무대가 된 곳이라잖아요. 오늘은 거기 한번 가봅시다” 

구미가 땡겨 담배 불을 빌리는 척 하며 슬쩍 테이블을 옮겨 앉았다. 자세히 보니 그중 한 사람은 같은 방 옆 침대쓰는 쿠마상이라는 일본 남자다. 그리고 같이 파이팅 넘치게 얘기하고 있는 남자는 키소상. 필리핀이랑 태국을 돌면서 이종격투기 선수로 살아가고 있단다. 어쩐지 머리스타일부터 파이팅이 넘치더라. 소위말하는 옆머리는 짧게 밀고 윗머리 부분만 길게 솟아있는 닭벼슬 머리다. 


“저도 오늘 특별히 갈 곳 없는데 같이 가도 될까요?

그렇게 다른 멤버가 급 구성되었다. 코지는 앙코르왓 3일 입장권을 끊어서 한번 더 가고 싶다고 그러고 다이스케는 오늘도 자전거로 이곳저곳 돌아본다고 한다. 

말 나온김에 너무 더워지기 전에 가자고 얼른 툭툭 하나를 셋이서 빌렸다. 툭툭이라기 보다는 조그만 트럭 뒷부분을 개조해 천막을 씌우고 딱딱한 나무 판자로 의자를 만든 차였다. 그렇게 우리는 흙먼지 잔뜩 마시며 출발했다.

캄보디아의 시골은 역시 아름다웠다. 가는길은 대부분 비포장 도로라 천장에 몇 번이나 머리를 박고 흙먼지에 얼굴이 범벅이 됐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즐겁다. 중간에 내려서 기지개도 필겸 담배도 하나 필겸 잠깐 쉬었다. 흙색깔은 어떻게 그렇게 진한지 또 물소들 모습은 어떻게 그렇게 정겹고 순수한지 어느하나 마음에 안드는 것이 없었다. 다시 열심히 달려 방멜리아에 도착했다. 한 두 세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온 것 같다.


메인 유적지인 앙코르왓이 증축되고 보수되고 청소되는 동안 이 곳은 발견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좀 더 캄보디아스러운 순박한 곳이었다. 건물이 대부분 무너지고 큰 돌들이 발에 밟히고 굴러 다녔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가 더 인상깊었다. 


트럭에서 내리니 어떤 캄보디아 아저씨가 유창한 영어로 이곳저곳을 따라 오라고 하며 우리를 안내하고 역사를 설명해줬다. 고마웠지만 뭔가 불안했다. 가이드가 끝나고 돈을 요구할 것만 같았다. 키소상과 쿠마상은 그런 건 그냥 무시해버리면 된다고 하고 걱정없이 신나서 돌아다닌다. 영어를 알아듣는 나만 꺼림칙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투어가 끝나고 약간의 팁을 요구한다. 역시나 형님 둘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가버린다. 나보고 얼른 그냥 오란다. 트럭에 탈때까지 계속 따라왔지만 그냥 트럭에 타고 돌아와 버렸다.


숙소에 도착해서 더위와 싸우고 흙먼지와 싸우느라 고생한 우리는 샤워를 하고 바로 잠들었다.  


잠깐 눈붙이고 일어나 페이스북에 사진을 몇장 올렸더니 반가운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캐나다 유학 생활할 때 만난 야스시라는 친구가 지금 출장차 캄보디아에 와 있다고 지금 어디냐고 당장 만나자고 한다. 야스시는 나랑 동갑인데 옛날부터 사업을 하고 싶어했다. 지금은 6개의 나라에 회사를 가지고 있는 CEO다. 수행비서차 아리나짱이라는 일본여자애랑 같이 왔는데 이 인연으로 내가 미얀마에 갔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리나는 지금 미얀마에 산다. 


거의 6년만에 보는 야스시. 많이 변했다. 사장님같은 포스가 풀풀 난다. 적당히 느려진 말투에 당당한 눈빛. 고급스러운 여름 수트. 사장님 맞나보다. 골아떨어진 코지는 놔두고 다이스케와 야스시 그리고 나 아리나짱은 밥도 먹을 겸 캄보디아 전통 공연도 볼겸 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신비스러운 음악에 더 신비스러운 몸짓. 충분히 즐긴 것 같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펍스트리트로 가서 목도 조금 축였다. 


역시 여행은 만남과 인연의 연속이다. 벌써 친구 몇 명이나 사귄걸까. 그리고 우연히 야스시는 내가 있는 동안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캄보디아로 왔다. 내가 여행을 계속 하는 이유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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