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폿
캄폿은 뭐랄까 나에게는 완벽한 도시다. 특히 이곳 라스트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며칠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다. 딱히 한 일도 없다. 그래서 사진도 몇 장 없다. 가만히 강가에 누워 있다 배고프면 밥 먹고 맥주한잔하고 또 누워 있다 하는 나날들이었다. 캄퐁참의 벤과 요바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약간의 편의 시설이 추가된 느낌이다.
눈을 뜨면 강 바로 앞의 방갈로에 눕는다. 가끔씩은 해먹에 누워 있기도 한다. 데이빗과 잠깐 걸어서 밥을 먹으러 나가기도 한다. 가끔씩 귀찮을 때는 피터에게 물어보면 피자 배달도 해준다. 캄보디아에서 배달이라니. 이래서 루도가 여기에 처음 자리 잡았나 보다.
오늘은 어제 만났던 시끄럽고 흥이 넘치는 프랑스 친구들이 떠나고 조금은 심심해져서 데이빗과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봤다. 작은 마을이지만 서양인 여행자들이 꽤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 있는 술집들도 몇 개 있고 카페도 식당도 잘 되어 있었다. 처음 버스에서 내렸을 때 보았던 캄폿의 랜드마크인 두리안 동상도 보인다.
숙소 앞 강 위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 옆 동네로 가보기로 했다. 다리 하나만 건너니 새로운 세상이다. 이쪽은 여행자들이 전혀 없나 보다. 캄보디아의 여느 시골 동네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오래 탔더니 피곤하기도 하고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는 것 같아 얼른 자전거 머리를 돌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기 직전 얼른 들어가라고 말하는 듯이 갑자기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다. 1분만 더 늦게 비가 왔다면 그렇게 쫄딱 속옷까지 젖진 않았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여행할 때의 빗소리는 언제나 경쾌하다. 오늘 비는 조금은 심할 정도로 세차게 몰아쳤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콜성 비다. 곧 그치겠지’ 생각했지만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숙소 바로 옆의 강은 눈에 띄게 물이 불어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배가 떠내려와 숙소 옆에 쓰러져 있었다. 비가 많이 오긴 했나 보다.
오늘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타투를 하러 가기로 했다. 몸에 타투가 많던 피터가 소개를 해주었다. 가끔씩 피터도 직접 타투를 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연습생 정도라고 한다. 피터가 소개시켜준 포르투갈 타투이스트 다니엘. 아침에 타투샵으로 가서 예약을 하고 데이빗과 시간을 좀 보내다 저녁이 돼서 타투를 하러 갔다.
다니엘은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도안을 보여주었다. 하나 같이 마음에 안든다.
“나는 남들이 한 타투는 싫고 내가 생각한 디자인이 있어. 나는 여행자라 지구를 목 바로 밑 등에 새기고 싶어”
다니엘의 표정이 밝아진다.
“오! 그래 좋은 생각이야.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와서 이 그림으로 해주세요 하는 사람들 싫어해. 나도 아직 지구모양은 해본 적이 없어. 좋아!”
그러고는 구글맵을 켜고 지구본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르투갈 사람이라 그런지 자꾸 유럽 부분을 보여준다.
“다니엘. 나는 유럽에 가본적도 없고 별로 관심이 없어. 미안한데 아시아 부분으로 보여줘. 나는 한국에서 왔으니 한국을 중간으로. 아니 너무 한중간이면 촌스러우니까 중간보다 조금 위쪽으로 자리 잡아줘. 아 그리고 일본이랑 한국 사이에 조그만 점을 찍어줘. 한국 쪽으로 더 가깝게. 이건 독도라는 섬인데 우리나라 섬인데 자꾸 일본이 자기네 거라고 우겨서 내 등에 새겨줘”
대충 도안이 나왔다.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 흑백. 티셔츠를 입으면 보일 듯 말말 듯 목 뒷부분에서 조금 밑에. 한 시간당 80불로 가격을 책정하고 타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안 아팠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30분에 한번씩 담배 하나씩 피며 휴식시간을 가지고 열심히 참았다. 3번의 담배 타임을 갖고 마지막 10분 정도를 남기고 다니엘이 말했다.
“이제 마무리 10분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아. 담배 하나 더 피면서 쉬자”
다니엘도 집중하느라 피곤했나 보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래서 같이 담배 하나씩 피려는데 익숙한 냄새가 난다. 다니엘은 대마초를 핀다. 나는 그러려니 한다. 대마초 정도야 여기 사람들 다 핀다.
다시 타투를 하는데 약 기운이 올랐는지 다니엘이 약간은 비틀거리는 거 같다. 웃고 넘기자. 한편으로는 평생 내 몸에 남는건데 잘못되기만 해봐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도 캄보디아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하고 웃어 넘겼다.
숙소로 돌아와서 데이빗에게 등에 연고 좀 발라 달라고 하고 타투 하는 동안 긴장 했었는지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다.